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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⑨ 스타 탄생 (상)

중앙일보 2011.05.05 00:17 종합 25면 지면보기



그래 서울로 가자, C-46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인기 절정 시절의 신성일씨. 신상옥 감독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김한용 사진집 『꿈의 공장』(눈빛·2011)에서]



지난해 연예계 빅 뉴스 중 하나는 ‘슈퍼스타K’ 허각의 탄생이다. 배관공 출신의 허각이 130만 지원자 중 깜짝 우승을 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인생역전!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기적은 52년 전에도 있었다. ‘슈퍼스타K’의 원조쯤 될까.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누구든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에서도 말했듯 난 고등학교 2학년 이후 떠돌이 생활을 했다. 고교 졸업 후 첫 상경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당시 공군 수송비행단 조종사였던 형님의 주선으로 대구비행장에서 C-46 수송기를 탔다. 비행기가 추풍령에서 ‘에어 포켓’(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급강하하는 현상)으로 뚝 떨어지자 멀미하던 난 기절하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박현숙 중령(여군)의 얼굴이 보였다. 까까머리 청년이 여군 장교의 무릎을 베고 잠든 모습을 상상해보라! 뱃속 소화액까지 게워낸 상태였다. 어찌나 창피했던지. 여의도비행장에 내리자마자 멀미는 꾀병처럼 사라졌다.



 난 처음에 청계천 판자촌에 자리잡았다. 1950년대 후반 대한민국 최고 번화가는 충무로와 명동. 별로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그곳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충무로 1가 중국대사관과 중앙우체국 사이에 ‘기쁜소리사’라는 음향기기사가 있었다. 최신 음향기기를 구경할 수 있는 그곳을 좋아했다. 또 지금의 프라자호텔 뒤쪽은 화교의 집결지였다.



 그날도 난 그냥 기쁜소리사 부근을 걷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모자부터 구두까지 모조리 하얀 컬러로 치장한 일명 ‘마카오 신사’가 걸어왔다. 몸에 걸친 건 죄다 마카오 수입품으로, 당시 최고 멋쟁이들의 패션이었다. 1인당 GNP가 200달러가 안되던 시절이다. 그 신사는 보디가드 같은 두 명을 양쪽에 끼고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고교 동창 손시향이었다.









손시향



 손시향은 여러모로 나와 닮은 꼴이었다. 3년이나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그는 50년대 그랜드 피아노가 있던 대저택에 살던 대구의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점심 시간이면 우리에게 팝송을 소개하곤 했다. 매력적인 여배우 도리스 데이가 출연한 영화 ‘카라미티 제인’(195년)의 타이틀곡 ‘시크릿 러브’를 칠판에 영어로 써서 가르칠 정도였다.



 그의 집안도 우리처럼 폭삭 망했다. 어머니가 계모임 하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역시 평지풍파를 겪으며 수원에 있던 서울 농대에 들어가는 데 그쳤다. 음악적 재능이 있던 손시향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가요계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렸다. 나 역시 그의 노래 ‘검은 장갑’을 알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의 본명은 손용호였다. 나는 크게 불렀다. “용호야!”



 그가 나를 알아 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장면은 최소한 서로 얼싸안고 “니, 잘 살았나? 친구야!”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각별한 사이였던 데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다니. 그런데 그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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