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남의 돈으로 생색내기

중앙일보 2011.05.05 00:18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기원
사회부문 차장




울산은 국내 7대 도시 가운데 1인당 지역총생산(GRDP)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자 도시다. 하지만 7대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시립도서관이 없다. 남부·중부·동부도서관이 시립으로 출발했지만 1997년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모두 구립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울산시 예산에서 공공도서관 운영비 지원 항목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갑갑해진 것은 시립일 때부터 관리·운영을 맡아온 울산시교육청이다. 소유권자가 광역자치단체에서 재정 형편이 빠듯한 기초단체로 바뀌면서 운영비 지원이 쥐꼬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도서관 운영비 명목으로 지자체에서 지원받은 예산은 6억4300만원으로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도서관 운영비 총액의 15%에 불과하다. 대구시교육청이 공공도서관 운영비의 66%를 지자체에서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37%), 부산(40%), 인천(28%) 등도 울산보다 형편이 낫다. 최근 울산에서 도서관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달 중순 김복만 울산시교육감이 “지자체에서 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도서관에 근무 중인 (교육청) 직원을 모두 철수시킬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교육청 실무자는 “자치단체장이 교육·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발끈한 김두겸 남구청장이 기자회견부터 했다. “방만하게 운영해놓고 예산 문제로 어렵다니 우리가 직접 운영하겠다.” 교육청 실무자도 “남의 기관에 대놓고 방만한 운영이라니…집주인한테 수리비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방 빼라고 뒤통수를 치는 격”이라며 흥분했다.



 김 교육감에 대해 지자체장들이 정색을 하고 나선 배경은 뭘까. 울산지역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은 우리가 부담하고 생색은 교육감이 다 내겠다는 자세 아니냐”고 털어놨다. 김 교육감의 전력(?)도 거론됐다. 김 교육감은 지난해 “중·고 신입생 교복 무상지급 공약은 기업체 지원으로, 무상급식 공약은 지자체 지원으로 비용의 3분의 1을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체·지자체가 “생색은 교육감이 내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라는 통보냐”며 냉소를 보내자 공약 실행 계획을 대폭 축소한 바 있다.



 그런데 자치단체장은 ‘남의 돈으로 생색내기’를 한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까. 남부도서관 운영 책임자가 교육감에서 구청장으로 바뀌는 데 드는 비용을 보자. 남구청은 도서관의 일부 서비스를 축소해 운영비를 24억원에서 10억원 선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10억원은 남구청이 전액 떠안아야 한다. 교육청에 위탁해놓고 운영비 일부만 지원해온 현재보다 7배가 넘는 금액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잇속은 ○○이 챙기겠다’고 할 때 곰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만큼 화나는 일도 없다. 도서관 운영 주체에 상관없이 운영비는 결국 시민 세금으로 마련된다. 도서관 분쟁을 지켜봐야 하는 울산시민은 그야말로 곰 역할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이기원 사회부문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