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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 6자회담 운전석에 앉았지만 …

중앙일보 2011.05.05 00:16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6자회담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대화 테이블 마련에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희망에서다. 북한도 이에 응하는 자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그 때문에 갑자기 6자회담을 둘러싸고 남북의 입장이 뒤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대화를 모색하는 미국·중국 및 북한과, 이에 신중한 남한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6자회담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5:1(북한 대 여타 5개국)의 대립구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5:1(한국 대 여타 5개국)의 구도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역전된 신(新) 5:1의 구도 속에서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일련의 회담 재개 움직임을 우연적인 해프닝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난달 중순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운전석에 앉은 것은 한국이지만”, “북한의 ‘진정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가 한번 만나보는 것이 어떤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미국이 인도적인 식량지원 문제를 검토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국 내에서도 오바마 행정부가 그동안 내세워 온 ‘전략적 인내’의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논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의 평양 방문이나 우다웨이(武大偉·무대위)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서울 방문도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카터는 “북한이 사전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여기에 우다웨이 역시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북·미대화-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공식을 들고 대화에 물꼬를 트려고 서울을 방문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의 타진에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될 때까지 만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인도적인 식량지원에 대해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을 탓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북한에 대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국민정서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약속한 합의들을 멋대로 뒤엎은 북한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합의가 더 이상 국익에 맞지 않으면 파기할 수 있다. 그것은 비록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정치적으로 허용된 관례이다. 하지만 준수할 의사도 없으면서 합의에 임하는 것은 배신행위에 다름 아니다. 바로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2·13합의를 핵·미사일 실험으로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북한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카터를 통해 전달하려 한 메시지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로서도 대화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을 경원시하는 듯한 우리 정부의 자세는 염려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가 신 5:1의 구도 속에서 더욱 어려운 입장에 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비운 6자회담의 정치적 진공을 북한이 메우도록 놔 둘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



 물론 북한의 진정성 확인 없이 털썩 6자회담의 테이블에 다시 앉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진정성 확인을 위해서라도 한번 만나보는 것이 절박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모든 역사적인 협상은 극심한 불신 속에서 시작됐다. 1979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ALT II)은 그 단적인 예이다. 당시 코시긴 소련 총리는 “우리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고 당신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유명한 말로 협상을 시작했다. 결코 흘려보낼 남의 얘기가 아니다. 더 이상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진공을 메우는 데 우리의 지혜와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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