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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내놔?" 北 괘씸죄에 걸려 처형되는 '재끼'들은 누구

중앙일보 2011.05.04 11:26






북송선을 타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출처=중앙포토)







한때 북한에서 잘나가는 부자였던 북송 재일교포들이 요즘엔 죽도 감지덕지하며 먹을 정도로 극빈층 신세로 전락했다. 북한이 이들을 볼모로 일본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괘씸죄'로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감옥에 가두는 등 복수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형시킨 경우도 있다.



북한에선 재일동포 귀국자들을 '재끼'라고 부른다. ‘재일 귀국자’라는 말을 줄여 굳어진 발음이다. 요즘 북한에선 '재끼들의 수난시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재끼들은 북한 주민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VIP였다. 일본에서 가져온 재산도 넉넉한 데다 일본 친척들이 돈을 보내줘 안정적이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는 상류층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며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문제 삼으며 북한 송금을 제한했고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도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이나 북한에 등을 돌리며 지원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재끼들을 볼모로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지 않으면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가하겠다"며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거절당하면 이들을 단칼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2000년 함경북도 회령시를 주름잡았던 조폭 조직 '깜대부대'를 지원한 죄목으로 교화소에서 10년형을 산 재일교포 출신 한모씨도 괘씸죄를 작용받은 사례다.



당시 깜대부대는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폭력과 밀수, 강간을 저지르며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한씨는 이들을 접대하다 당국의 소탕 작전 과정에서 붙잡혔다. 정치범수용소행은 면했지만 당시 주민들 사이에선 '10년 형은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한씨와 그 아버지가 그동안 회령시에 기여했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씨 아버지는 일본 가족들로부터 돈을 지원받아 회령시에 신발 공장 등 여러 채의 공장을 세우며 회령시를 일구는데 힘썼다. 평양을 위해 쓰라며 수십만 달러를 바친 적도 있었다. 북한은 한씨를 교화소에 보내며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라"고 압박했으나 일본 가족들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한씨는 10년 형을 다 살았고 그 사이 한씨 일가는 파산해 쪽박을 찼다. 뙈기밭을 가꾸며 죽물로 간신히 삶을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1999년 양강도 혜산에서도 자동차 수리공장 주인 아들이었던 재일교포 출신 김광성씨가 처형당하고 가족들이 추방됐다. 북한이 일본 친척들에게 설비를 새로 지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복수한 것이었다.



재일동포 김병언씨도 1980년 혜산병언맥주공장을 설립했으나 북한의 설비 지원 요구를 거절했다 공장을 완전히 빼앗겼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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