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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헌터’ 패네타

중앙일보 2011.05.04 01:55 종합 1면 지면보기



명품 작전 ‘제로니모 E-KIA’



대통령 자리에 앉은 군지휘관 … 이것이 미국의 힘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의 상황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안보팀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인 ‘제로니모 E-KIA’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다. 골프복 차림의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을 설명하는 마셜 웹 합동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에게 대통령 의자를 양보하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빈 라덴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보곤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 대통령, 웹 부사령관,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미 백악관 웹사이트]





작전명 ‘제로니모 E-KIA’. 리언 패네타(Leon Panetta·73)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사살 작전을 이렇게 이름 붙였다. 제로니모는 미국을 괴롭혔던 전설적인 아파치족 추장으로 여기서는 빈 라덴을 가리킨다. AP 등 외신은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 CIA가 작은 실마리 하나를 토대로 8개월간의 치밀한 작전준비 끝에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성공시켰다고 보도했다.



 2700만 달러(약 288억원)의 현상금이 걸린 ‘역사상 가장 비싼 몸값의 사내’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은 최측근 연락책의 소재를 확인한 것으로 시작됐다. CIA가 연락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01년 9·11 직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피의자들을 통해서였다. 그 뒤 동유럽 모처의 비밀교도소에 수감된 또 다른 테러범들을 신문하고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 정보요원들을 투입한 끝에 연락책의 성(姓)이 ‘아부 아메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토대로 미 국가안보국(NSA)은 가능한 한 모든 전화를 도청하고, e-메일을 해킹한 끝에 그의 이름이 ‘셰이크 아부 아메드’임을 확인했다.













 CIA는 지난해 7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도시 페샤와르에서 흰색 스즈키 승용차를 탄 아메드를 포착했다. 현지 요원들을 동원해 약 한 달간 전화통화 등 그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 결과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 60㎞에 있는 군사·휴양 도시 아보타바드에서 높은 담장이 쳐진 3층짜리 저택에 그가 출입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택 거주자들의 행태 관찰 보고서를 받은 패네타는 빈 라덴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 하지만 저택에 전화나 인터넷 시설이 없어 더 이상의 확인은 불가능했다. 패네타는 요원을 투입해 확인하고 싶었지만 빈 라덴의 도주를 우려해 위성사진을 통한 관찰을 계속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이곳이 빈 라덴의 거처라고 확신한 패네타는 지난 2월 국방부와 군사작전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미 본토에서 은밀히 날아갈 수 있는 B-2 스텔스기를 통한 정밀 폭격과 특수부대 투입 등 방안이 거론됐다. 작전 시기와 방식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가 3월 이후 다섯 차례 열렸다. 회의 참석자를 제외하고는 백악관 관리들에게도 회의 내용을 비밀로 했다.



 회의에선 1980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구출 실패, 93년 소말리아에서의 미군 블랙호크 헬기 격추 등 작전 실패 사례가 거론됐다. 참석자들은 온갖 부정적 시나리오와 싸워야 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오바마는 폭격을 할 경우 저택과 그곳에 사는 사람 전체가 사라져 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DNA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특수부대 투입을 결정했다. 그 뒤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 인근엔 빈 라덴의 저택과 동일한 시설이 생겨났다. 작전에 투입될 네이비실 대원들은 4월 초까지 이곳에서 강도 높은 실전 대비 훈련을 했다.



 지난달 28일(미국 동부시간) 패네타는 작전 준비를 마쳤다며 오바마에게 작전 지시를 요청했다. 오바마는 16시간의 숙고 끝에 “갑시다(It’s a go)”라며 작전 명령을 내렸다. 1일 4대의 헬기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같은 시각 오바마와 주요 각료들은 백악관 상황실 모니터 앞에 모였다. 백악관 웨스트윙엔 외부인의 출입이 일절 금지됐다. 패네타는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CIA 본부에서 화상으로 “그들이 목표에 도착했다”며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백악관에선 마셜 웹 장군이 보충설명을 했다. 그 뒤 “제로니모 모습 확보”, 수분 뒤 “제로니모 작전 중 사망”이란 보고가 이어졌다. 한참 동안 침묵하며 굳은 표정이던 오바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를 잡았다(We got him).”



 NYT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비난에 시달렸던 CIA가 빈 라덴 사살로 구원을 얻었다”고 이번 작전을 평가했다. 고문 의혹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의 민간인 오폭 등에 이어 최근 아랍 민주화 혁명을 예상치 못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CIA의 위상을 이 한 건으로 상당히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패네타가 이미 4월 초 국방장관에 내정된 것은 빈 라덴의 위치 파악을 성공적으로 한 데 대한 평가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CIA를 정보수집 기관을 넘어 아프간 등지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요인 암살작전을 수행하는 전투 조직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법학자와 예산 전문 하원의원 출신으로 정보업무 경력이 전무했던 패네타는 공직 경력에서 제2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편 빈 라덴은 네이비실 대원들이 저택에 들이닥치자 침실로 피신해 27세 연하(27살)인 젊은 부인의 등 뒤에 숨은 채 AK-47 자동소총을 난사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이 부인은 빈 라덴을 향한 대원들의 총격에 숨졌다. 빈 라덴의 인간 방패 노릇을 한 것으로 외신들이 보도한 여성이 바로 이 부인이었다.



이충형 기자











◆작전명 ‘제로니모 E-KIA’=빈 라덴을 사살한 네이비실 요원들은 “제로니모 E-KIA”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빈 라덴(암호명 제로니모) 사살(Enemy Killed In Action)’이란 뜻이다. 아파치족의 추장(1829~1909)이던 제로니모(사진)는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서부에서 인디언을 몰아내려는 미국을 괴롭혔다. 미군은 5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한 끝에 1886년 그를 체포했다. 이후 풀려났으나 알코올 중독으로 쓸쓸히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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