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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베이스는 안 된다? ‘됩니다’ 보여준 전승현

중앙일보 2011.05.04 00:40 종합 26면 지면보기



185㎝ 100㎏ 당당한 체격
묵직한 성량으로 유럽 휩쓸어
지난달 독일서 궁정가수 호칭
주빈 메타도 파트너로 인정



베이스 전승현씨가 200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 ‘로엔그린’에 출연한 장면. 독일의 왕인 하인리히 역할을 맡았다. 전씨는 대학원 재학중이던 1997년 빈 벨베데레 콩쿠르 2위에 오른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빈 메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자존심이다. 세계 각국의 성악가가 이곳에서의 데뷔를 꿈꾼다. ‘라 스칼라’ 무대에 처음으로 선 한국 남성 성악가는 누구? 전승현(38)씨다. 200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를 통해서다. 바그너의 후손이 대대로 운영해 독일 오페라의 ‘저작권자’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무대에도 1999년부터 5년간 출연했다. 한국 성악가로 네 번째였다.



 전씨는 저명 지휘자의 사랑도 듬뿍 받는다. 예컨대 주빈 메타는 지난달 그를 긴급 호출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위로하는 자선 음악회에서였다. 메타와 전씨는 NHK 심포니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도쿄에서 공연했다. 이들은 매년 연말 도쿄에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파트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지휘자 고(故) 주세페 시노폴리는 2000년 신인이던 전씨를 R.슈트라우스 ‘평화의 날’ 음반 녹음에 파격적으로 참여시켰다.



 소식이 또 들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이 지난달 ‘캄머쟁어(Kammers·nger·궁정가수)’ 호칭을 수여했다. 왕정 시대에 왕이 내렸던 호칭이다. 독일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받았다. 한국인으로선 소프라노 헬렌 권에 이어 두 번째 영예다. 반면 한국 무대는 많지 않다. 2005년 서울 독창회가 마지막이다. 올 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 6년 만에 초청받았다. 왜일까. 베이스이기 때문일까. 남성 성악가 중 가장 낮고 무겁고 굵은 소리를 내는 베이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허락한 오페라 작곡가는 많지 않다. 테너·바리톤·소프라노가 삼각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베이스는 조연을 맡는 경우가 많다. 테너로서 경력을 쌓았다면 한국에서도 더 큰 스타가 됐을 법한 그를 만났다.



 -베이스를 선택한 계기라면.



 “음악교육으로 유명한 숭실중학교에선 보이 소프라노였어요. 이 덩치를 보면 상상이 되세요? (웃음) 변성기를 거치면서 베이스로 자리를 잡았어요. 베이스는 반짝 스타가 되긴 힘들어요. 하지만 오래 노래할 수 있어요. 관리를 잘 한다면 말이죠. 테너·바리톤과 달리 지금 제 나이가 베이스에선 ‘초년기’에요. 나이가 더 들면 훨씬 무게감 있고 원숙한 진짜 베이스가 되는 거죠.”



 -역할도 많지 않을 텐데.



 “베르디·바그너 등은 매력적 베이스 역할을 많이 창조했어요. 바그너의 ‘구르네만츠’는 현재 제게 딱 맞는 ‘어린 베이스’ 역이고, ‘하겐’은 앞으로 정복할 ‘원숙한 베이스’에요. 베르디 ‘리골레토’ 의 스파라푸칠레,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 같은 역할도 존재감이 큰 베이스들이고요. 저는 역할 하나를 5년 넘게 연구해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베이스 숫자가 적지만 그런 만큼 잘 하는 사람도 드물어요. 잘하면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전씨에게서 베이스의 서러움은 읽을 수 없었다. 가능성에 훨씬 큰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200% 발휘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키 185㎝에 몸무게 100㎏은 ‘유전자가 선물한’ 베이스 체격이다. "아틸라(Attila)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요. 유럽을 정복한 훈족 왕에게서 따왔죠.” 그만의 팽팽한 자신감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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