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분석] 외화곳간 유지비 52조 … 많을수록 좋다?

중앙일보 2011.05.04 00:07 경제 1면 지면보기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 … 김중수의 세 가지 고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들어간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종종 하는 말이다. 외환보유액 관리에서 안전성과 유동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수익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외환보유액은 만약을 대비한 ‘비상용 곳간’이다.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도록 현금화가 쉬워야 하지만 수익률이 시장에 너무 뒤떨어지면 국부가 쪼그라든다. 상충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원칙을 잘 조화시키는 게 한은 총재의 역할이다.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를 넘기면서 김 총재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한은은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전달보다 85억8000만 달러 늘어난 3072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204억 달러)보다 15배 이상 급증했다. 신재혁 한은 국제총괄팀 과장은 “미국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유로·파운드화로 표시된 자산의 가치가 크게 늘고 운용수익도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회복과 수출 증가로 외환보유액은 당분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 총재의 첫째 고민은 ‘적정 규모’다. 중앙은행 총재인 그가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는 건 오해’다.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늘리려고 달러를 사들이려면 발권력을 동원해 원화를 찍어야 한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와 금리가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은은 달러를 사는 만큼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시중자금을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이자부담이 생긴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의 수익이 통안증권 이자율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금리가 항상 선진국보다 2% 안팎 높게 유지돼 역마진이 생기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은 2001∼2008년 이런 식으로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52조2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적정 외환보유액엔 정답이 없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들이 내놓는 수치는 2000억~4000억 달러로 편차가 크다. 이 가운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골디락스 존’을 찾아내는 게 김 총재의 과제다.



둘째는 포트폴리오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자산 비중은 2009년 63.1%에서 지난해 63.9%로 커졌다. 세계 평균보다 2.3%포인트,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평균(58.3%)보다는 5%포인트 이상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의 기축통화 입지가 흔들리고 약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 취약할 수 있는 구조다. 주요국이 금 비중을 키우는 추세에서도 비켜나 있다. 한은은 최근 30여 년간 금을 사들인 적이 없다. 한은이 보유한 금은 14.4t으로 외환보유액의 0.03%에 불과하다.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52위 규모다.



 마지막은 운용방식이다. 한은은 지난 3월 조직 개편 때 외화자금국을 확대 개편해 외자운용원을 신설했다. 인사·예산의 자율성을 가진 임원급 원장이 보다 유연하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공모를 통해 부원장 등을 외부 전문가로 충원하는 일도 진행 중이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한국투자공사(KIC) 출연금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으로 공격적 투자에 나서기엔 아직 부담스럽다. 김중수 총재도 명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민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중앙은행 성격에 맞춰 내놓는 맞춤형 상품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할 때”라고 지적했다.



나현철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