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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칼럼] 아기 공룡 둘리가 되고 싶다고 ?

중앙일보 2011.05.04 00:03 종합 39면 지면보기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아기 공룡 둘리처럼 사랑받는 캐릭터로 “짜잔~” 변신하는 방법. 4·27 재·보선 패배 이후 ‘공룡 정당’ 한나라당은 이런 요술지팡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제는 하루 종일 의원 연찬회를 열고 격론을 벌였다. 변신의 요술지팡이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셈이다. 의원들은 “한나라당은 응급실 중환자 수준”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심이반 분위기가 “탄핵정국(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심각하다”라는 뼈아픈 자기 질책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원인 진단과 처방이 수없이 들어오던 똑같은 내용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한 당의 무기력, 친이-친박 갈등 등 원인 분석부터가 그렇다. 의원들은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하는가 하면 당내 화합의 필요성을 합창했다. 소통과 타협 정치, 진정 서민에게 다가가는 정치, 회전문 인사 배격 등도 대책으로 내놨다. 모두 옳은 지적이요, 처방전이다. 하나 그런 대책 또한 지난번 지방선거 패배 때 자신들이 제시했던 내용 그대로다. 그때 그런 처방대로 치료가 이뤄졌다면 아마도 이번 재·보선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실천에 옮기진 못하고 사후(死後) 약방문(藥方文)만 들고 우왕좌왕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을 놓고 볼 때 지금도 늦지는 않다. 새로 구성될 지도부와 비상대책위, 아니 그보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그동안의 약방문대로 정치를 펼친다면 한나라당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부터 변신에의 확신감이 없어 보인다. 연찬회 날 밤 한 상가(喪家)에서 만난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의 얼굴에선 오히려 잘되겠느냐는 회의감이 짙게 묻어났다.



 하긴 얽히고설킨 공룡의 복잡한 내부 모순이 한바탕의 푸닥거리로 말끔히 해소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을 초식 공룡에 비유하며 자아 비판한 이는 전여옥 의원이다. 뇌는 작고 몸이 비대해 결국 멸종한 공룡처럼 소수 야당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거대 여당이 “속상하다”고 했다. 비유가 절묘하다.



 공룡은 길이가 30m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었지만, 신경세포의 전달 속도는 1초 동안 30m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꼬리 끝을 다른 동물에게 물려도 그 신호가 뇌에 도달하는 데 1초가 걸린다. 꽁무니를 흔들라는 지령이 뇌에서 꼬리까지 전달되는 데 또 1초가 걸린다. 작은 뇌의 느릿느릿한 판단시간까지 합산하면 도합 3초쯤 지나야 물린 꼬리를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꼬리가 잘려나간 뒤다. 공룡의 몸은 대신 각 부분에 마치 척추반사처럼 작용하는 대뇌 출장소 같은 게 있었다지만 어쨌든 신경세포의 전달 속도가 워낙 느려 마침내 멸망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됐다고 한다.



 집권 여당 한나라당 역시 공룡처럼 행동이 느려 터졌다. 말초 신경세포는 시대의 흐름과 민심의 변화를 절감하는 듯한데, 뇌까지 전달되는 과정이 느리다. 또 그걸 받아든 뇌의 분석과 판단, 그리고 결단도 느리다. 작은 짐승에게 물려 잘려나가는 꼬리를 눈으로 뻔히 바라보면서도 꼬리를 흔들어 떨쳐내지 못하는 불쌍한 짐승. 의원 연찬회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행동에 나설 것이란 확신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화합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그제 반성의 연찬회 석상에서조차 신경전을 펼쳤다. 화합은커녕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한판 결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놓고 최고 주주들의 “내 탓이오”가 들리지 않는 것도 여당이 바뀔 것이란 기대를 어둡게 한다. 이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저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화합해 솜씨 있게 국정을 이끌어 나갈지 아무런 비전 제시가 없다. 물론 급한 건 내년 대선을 앞둔 박 전 대표 쪽이다. 화합의 새 정치를 선보이지 않으면 부족한 2%의 산토끼를 잡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쌓아놓은 원칙의 벽이 워낙 높다. 과연 그걸 극복하고 손을 내밀 수 있을지.



 개각이나 청와대 인사도 그렇다. 소리는 요란한데 하루 이틀 늦어지다 보니 벌써 김이 빠지고 있다. 오죽하면 이 대통령은 달궈진 쇠를 찬물에 넣어 식혀서 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정치는 또한 타이밍의 예술이라는데 이 대통령에겐 그런 결단력이 무척 아쉽다.



 초식 공룡을 귀여운 아기 공룡 둘리로 변신시키는 요술지팡이. 그런 건 없다. 다만 둘리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짓’을 하면서 민심이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다.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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