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은 친구, 나무는 선생님 … 아토피 깨끗이 나았어요

중앙일보 2011.05.02 02:27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벽도, 창문도 없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천장이다. 그루터기와 바윗돌이 책상이자 의자다. ‘숲유치원’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교실을 내준다. 나무·바위·물·곤충 등 오감을 자극하는 숲 속 천연자원은 친환경 교재다. 국립산림과학원 구길본 원장은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숲유치원은 성장 발달은 물론 사고에도 날개를 달아 주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부모·교사가 모두 웃는 야생교육의 현장, ‘인천대 숲유치원(인천 청량산)’을 찾았다. 2009년 8월 문을 연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매일반으로 운영된다.


[커버스토리] 숲유치원







인천대 숲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지난달 26일 인천 연수구 청량산 숲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국내 유일 매일반 운영 ‘인천대 숲유치원’의 전인교육



4월 26일 오전 8시30분, 인천시 연수구 청량산 입구. 황사비가 내렸다. 수은주가 9도를 가리켜 제법 쌀쌀했다. 오전 9시가 되자 6~7세 아이 34명이 모였다. 결석한 아이는 감기에 걸린 한 명뿐이었다.



 아이들은 방수옷에 형형색색의 우의와 장화로 무장했다. 인천대 숲유치원의 모토가 떠올랐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복장만 있을 뿐이다’.



 숲유치원생은 오전 9시에 산에 올라 수업을 마치고, 낮 12시30분에 내려온다. 방학은 여름·겨울 통틀어 4주뿐이다. 인천대 숲유치원 김은숙 원장은 “태풍이 불거나 폭설이 오지 않는 이상 모든 수업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교육장소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더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동백꽃을 돋보기로 관찰하기도 한다. 행렬이 50m 이상 늘어져도 교사들은 채근하지 않는다. 성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거리인 수업장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아이들이 10m 길이의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를 발견했다. 10여 명이 우르르 올라타더니 발을 구르면 반동을 준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아카시아에 매달린 아이들은 “신난다”며 깔깔거린다. 인천대 사범대 유아교육과 이명환 교수는 “나무를 타며 대근육과 소근육이 고루 발달해 성장에 도움이 된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에 집중력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숲유치원은 일반유치원보다 신체·정서·언어·인지·사회성·창의성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003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피터 해프너 박사와 지난해 인천대 숲유치원의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숲유치원에 다닌 이빈(7·여)이 아빠 조용석(36)씨는 “소극적이었던 애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숲에서 뛰어논 뒤 감기 앓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숲유치원에 다니며 산새에 푹 빠진 유태우(7)군은 한글을 금방 깨쳤다. 생태도감을 끼고 산 결과다. 박새·어치·딱따구리 같은 새도 척척 구분한다.









숲유치원생들이 쓰러져 있는 아카시아 나무 위에 올라타 발을 구르며 놀고 있다.



흙바닥에서 뒹굴며 면역력↑… 편식도 안 해



비가 그쳤다. 아이들이 산 중턱에서 자연산 옷걸이인 나뭇가지에 우의를 걸어 놓고 둘러앉았다. 숲유치원에는 정해진 교육장소가 없다. 오늘 수업 주제는 ‘비와 곤충’. 임호진(30·여) 교사가 미리 개미·메뚜기·무당벌레·나비 등 곤충 모형을 낙엽으로 덮어뒀다. “비 오는 날 곤충들은 어디로 갈까요?”(임 교사)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친다. “땅속요.” “나뭇잎 아래요.” “구멍 뚫린 나무에 들어가요.”



 “맞아요. 나뭇잎 뒤에 숨어요. 그럼 벌은요?”(임 교사) “벌집요.”(아이들) 아이들이 곤충이 된 양 숲 속 여기저기에 숨는다. 오전 10시40분 간식 시간. 아이들은 준비해 온 간식을 들고 다시 풀숲으로 흩어졌다. 삼삼오오 흙바닥에 앉아 배를 채웠다. 매일 자연식탁에서 간식을 즐기는 주영(6)군은 편식습관을 고쳤다. 주영이 어머니 김윤희씨는 “반찬 투정 없이 밥을 잘 먹어 부쩍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오전 11시부터는 학수고대하는 자유놀이가 시작된다. 하지만 빗방울이 다시 굵어졌다. 아이들이 교사들이 쳐놓은 천막 아래로 모였다. 그것도 잠시. 언제 우의를 챙겨 입었는지 모두 빗속으로 돌진했다.











“숲은 그늘 많고 축축 … 피부열 식히는 효과”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였다. 물길을 만드는 아이, 구덩이를 파는 아이, 5m 높이의 갈참나무에 설치한 그네 타는 아이까지 제각각 놀이에 취했다. 옷은 진흙으로 얼룩졌다. 아이들은 야전 병사를 방불케 했다.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코에선 콧물이 계속 흘렀다.



 ‘친환경 의사’로도 불리는 숲 덕분일까. 1년 반 동안 숲유치원에 다닌 홍지민(7)양은 네 살부터 괴롭히던 지독한 아토피 피부염이 거의 사라졌다. 동갑내기 도희양도 마찬가지다. 지민이 어머니 김문희(35)씨는 “목과 손을 매일 긁어 피가 멈출 날이 없고 잠도 못 잤다. 병원에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지금 거의 완치됐고 병원도 안 다니고 과자도 맘껏 먹는다”며 만족해했다.



 서초 아이누리 한의원 황만기 원장은 “한의학에서 아토피 피부염은 음기 부족에 따른 열을 원인으로 본다”며 “숲은 축축하고 그늘이 많다. 음기를 보충하고 피부 열을 식혀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최성호 교수는 “개방되고 활동에 제약이 없는 숲에서는 전염병의 위험이 적다. 아이들의 면역력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 시간 뒤 숲유치원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교사의 말이 들렸다. “정리할 시간이에요.” 아이들은 깊숙이 파놓은 물웅덩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투정 부리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내일 또 그 다음 날도 언제든 와서 놀 수 있는 곳이 숲유치원이다.



 아직은 적지만 숲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숲교실을 운영하는 유치원이 전국에 있다. 서울 송파구립 가락본동 어린이집은 지난해 5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숲반을 운영 중이다. 21명의 아이는 송파구 오금공원에서 수업을 받는다. 부산대도 올 3월 수목원 다섯 곳에서 주 1~2회 숲유치원을 운영한다. 각 지방 산림청에서 마련한 프로그램도 있다.



 가락본동 어린이집 윤영란 원장은 “서울 아산병원과 진행한 연구 결과 숲반 아이들은 수면 습관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줄었다”며 “평소에 많이 걸어 근육이 잘 발달돼 넘어져서 다치는 일도 적다”고 말했다. 이외 유아교육기관이 숲유치원 교육을 희망하면 산림청 산하 각 지역 국유림관리소나 자연휴양림에 숲 체험을 신청하면 된다.

www.foreston.go.kr



황운하 기자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숲유치원은=계절이나 날씨와 상관없이 모든 수업이 숲 속에서 진행된다. 나무·돌·흙·곤충 등 자연의 다양한 구조와 색·형태·냄새·변화를 오감으로 익힌다. 숲 유치원은 195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됐다. 이후 스위스·독일 등으로 확산됐다. 독일에는 1000여 개의 숲유치원이 있다. 스위스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다니는 숲학교도 운영한다. 국내에선 2009년부터 운영 중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