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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 예술성 평가 받아 보람”

중앙일보 2011.05.02 01:11 종합 27면 지면보기



전국 순회 전시회 이끈 조인숙 서예술진흥회 이사장



조인숙 이사장이 창암 이삼만이 쓴 ‘山光水色(산광수색)’ 앞에서 창암의 예술성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창암 이삼만-물처럼 바람처럼’ 전시회가 4월 23일 국립광주미술관에서 개막, 5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소품에서부터 높이나 길이 가 2~3m에 이르는 대작들까지 총 107점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두 달 간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전북 정읍시(3월 5~13일)·전주시(3월 18일~4월 17일)을 거쳐 광주를 찾았다. 5월 27일~7월 13일 제주도 서귀포시 전시회(도립 소암기념관)로 대미를 장식한다.



 고향인 정읍과 전주를 주 무대로 활동한 창암(蒼巖) 이삼만(1770~1847)은 호남 제일의 대 서예가. 충청도 출신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평안도의 눌인(訥人) 조광진(1772~1840)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꼽힌다. 그러나 후손이 일찍 끊긴 데다 추사의 그늘에 가려 그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창암은 모든 서체에 능했고, 유수체(流水體·흐르는 물과 같이 쓰는 서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 초서를 많이 남겼다. 특히 갈필(葛筆·칡뿌리)·죽필(竹筆·대나무)·앵우필(鶯羽筆·꾀꼬리털) 같은 특이한 도구나 옷감을 가지고 글씨를 쓰는 등 실험정신이 강했다.



 이번 전국 순회 전시회의 산파는 조인숙(52) 창암이삼만선생서예술문화진흥회 이사장. 그는 광주 출신으로 전남여고와 광주교육대를 졸업한 뒤 광주MBC 아나운서로 근무했었다. 1983년 정읍으로 시집가면서 이 고장 출신인 창암과 서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 이젠 ‘창암이면 내로라’라 하는 전문가가 됐다. 원광대 대학원에서 서예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고, 『창암의 서예술철학(書藝術哲學)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15년여에 걸친 기획과 준비 끝에 지난해 창암의 탄생 240주년을 기념해 이번 순회 전시를 감행했다. 그간 창암을 폭넓고 깊게 연구하고 학술대회(4회)와 휘호대회(3회) 등을 열어 관심을 증폭시킨 게 밑거름이 됐다.



 “창암 선생님을 저는 ‘서성(書聖)’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접하고 ‘우리 서예에 이런 분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며 놀라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대 명필을 넘어 한국 서예사의 정체성을 세운 분입니다. 그 업적과 작품성이 뒤늦게나마 제 빛을 보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



 그는 창암에 대해 “추사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한국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개혁적 유학파라면, 창암 선생님은 혹독한 자기 수련과 공부로 조선 고유 색의 서예를 풀어낸 국내파”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장 작품을 선뜻 내놓아 한 자리에서 창암 선생님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도록 도와 준 전국 박물관·미술관과 개인 소장자들에게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여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이번 전시회의 성공과 창암 재조명이 정읍시의 창암기념관 건립과 및 생가터 복원, 창암공원 등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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