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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중앙일보 2011.05.02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기존 가치 뛰어넘어 미래 비전 보여준 젊은 세대 … 홍진기 창조인상 영예를 품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됐다.



두 번째 영예를 안은 올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선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강준혁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장,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맡았다.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기성 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 ‘창조인’이란 이름 그대로 자기 영역에서 새로운 국면을 펼쳐 나갈 잠재력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한국 최초의 민간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의 대표언론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과학부문 KAIST 물리학과 김은성 교수



‘초고체’ 발견으로 세계 물리학계 주목 … 노벨상 물망















‘홍진기 창조인상’ 과학부문 수상자인 KAIST 물리학과 김은성(39) 교수는 세계 물리학계에서 ‘초고체(超固體, supersolid) 발견자’로 통한다. 그는 이 업적 하나만으로도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유력한 노벨 물리학상 후보라는 소리도 듣는다.



 초고체는 고체 헬륨 내부 일부가 점성이 없는 유체 상태로 변한 것을 말한다. 이를 초유체 현상이라 하는데 내부 원자들 간에 서로 붙잡고 있는 힘이 없어지면서 점성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초고체 현상을 발견한 것은 20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모세스 찬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과정을 밟을 때다. 고체 헬륨을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으로 얼리자 고체 헬륨 일부가 초유체로 변했다. 고체 헬륨 대부분은 고체 상태를 유지했지만 내부에서 원자들이 마치 점성이 전혀 없는 유체처럼 움직였다. 그런 상태의 고체 헬륨을 통에 넣고 돌리자 대부분은 통과 함께 회전했지만 초유체 상태로 변한 내부는 통을 따라 돌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고체에서도 초유체 현상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가 이 현상을 2004년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하자 세계 물리학계가 깜짝 놀랐다. 전혀 발견될 것 같지 않던, 고체에서의 초유체 현상이 실험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해 말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올해의 최고 물리학 연구 성과’로 초고체를 꼽았다.



 이전까지는 액체와 기체에서만 초유체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액체와 기체에서의 초유체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거나 이론을 정립한 과학자들은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무려 다섯 차례나 된다. 그래서 초유체 연구 성과는 노벨 물리학상의 보고라는 말까지 생겼다.



 김 교수가 발표한 초고체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초유체 현상이 아닌 일반적인 물성의 변화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와 공동으로 지난해 그 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해 논란을 잠재웠다. 모세스 찬 교수와 다른 연구 그룹도 초고체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에만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저자로 발표한 논문만 따져도 네이처 1편, 사이언스 2편, 네이처 피직스 1편, 피지컬 리뷰 레터 3편 등이다.



 2008년에는 ‘리 오셰로프 리처드슨(Lee Osheroff Richardson)상’을 받았다. 이 상은 액체 헬륨에서 초유체 현상을 발견해 1996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세 사람이 제정한 것이다. 올해에는 ‘국제 물리학연합(IUPAP)’이 시상하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김은성 교수=▶부산대 물리학과 학사(1998)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물리학 박사(2004) ▶KAIST 물리학과 교수(2006)



◆초고체와 초유체=초유체(超流體, superfluidity)는 점성이 없는 유체를 말한다. 초고체는 고체 안에 초유체 현상이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가 나타나면 고체 대부분은 그대로지만 내부 일부 원자들은 점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고체를 통에 넣고 회전시켜도 초유체 상태인 고체의 내부 일부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부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새 길 … 대안교육운동 주춧돌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이 지급된 1992년. 이강래(57·원광대 경영학과) 교수가 과거 운동권 선후배들을 찾아나섰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 총학생회장으로 옥고를 치른 이 교수는 “보상금을 헛되이 쓰지 말고 위기청소년 사업에 쓰자”고 설득했다. 13명이 기꺼이 보상금을 내놨다. 보상금을 받지 않은 9명도 동참했다. 이렇게 모은 돈에 은행 대출금을 합해 ‘위기청소년 밸리(Valley)’ 건설 부지를 구입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수만리의 3만9600㎡(약 1만2000평)가 그 땅이다.



 정치운동·노동운동 대신 학교 밖 위기청소년을 창조적 인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대안교육운동에 뛰어든 22명은 부지 매입을 계기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몇 년간의 협의 끝에 97년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혜자(最惠者·가장 많이 베푸는 사람이 가장 값진 것을 얻는다) 정신을 접목시킨 위기청소년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구체화했다. 이성식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장은 “이념보다 인간사랑, 가정과 봉사의 중요성 등 최혜자 정신이 교육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98년 4월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에 ‘위기청소년상담소’를 열고 이듬해엔 ‘한국청소년영상제’를 개최했다. 영상에 관심 있는 위기청소년들에게 단편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지도했다. 영상제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대안학교·특수예술학교 청소년들이 만든 100여 편 이상씩의 작품이 출품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과 대만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 올해로 13회째를 맞는다.



 2000년엔 ‘맥지영상미디어센터’를 열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현재 게임중독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 ‘winner’를 제작 중이다. 센터장인 김병윤 효덕초등학교 교감의 지도하에 차두옥 동신대 방송연예학과 교수가 감독을 맡았다. 게임중독에 빠졌던 청소년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방송연예학과 대학원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은 2000년 ‘비즈니스 장학링크’ 사업에도 나섰다. 결손가정 청소년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과 연결시켜 주고 있다. 보령제약·인사이트파트너스 등의 기업이 참여해 60여 명을 후원했다. 2001년엔 대안학교인 ‘도시속참사람학교’를 만들었다. 제하림 교장은 “미술·음악·무용·영화 등 두 가지 이상의 예술매체를 적용한 통합적 형태의 예술 세라피 교육 프로그램으로 위기청소년들의 재질을 계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원이 15명인 참사람학교에는 광주시 중장기쉼터 원생과 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맡긴 학생, 보호관찰소에서 수강 명령을 받은 청소년들이 다니고 있다. 학생 김미란(19·가명)양은 “참사람학교는 속박하지 않고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다”고 말했다.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은 2008년 예술에 재능이 있는 위기청소년들을 모아 ‘맥지희망나래단’을 창설했다. 또 사회안전부콤운동SSBC(Social Safety Business Community)와 한국위기청소년예술세라피교육센터, 학교 부적응 학생을 돕기 위한 가정형 Wee센터 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이강래 교수는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학교 밖 위기청소년들에겐 자립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후원자들과 함께 위기청소년 밸리를 건설해 자립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글=이철희 사회선임기자,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문화부문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전통·현대 아우르는 목수 … ‘방이 되는 가구’ 실험 화제















박종선(42)씨를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다. 목수, 가구장이, 디자이너, 건축가…나무를 다루는 모든 직업이 그에게 어울린다. 전통을 잇는 옛 눈으로 보면 대목장(大木匠·집 짓는 일을 하는 목수)과 소목장(小木匠·가구를 제작하는 목수)을 아우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와 친했던 그에게 나무는 재료 이전에 친구이자 영성(靈性)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살이에 기여하는 그 품성을 닮고 싶어서 나무와 산다. 나무가 작업실에 들어오면 몇 달씩 바라보며 얘기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서 나무가 이끄는 데로 목물(木物)을 다듬는다. 그는 “나에게 가구는 나와 나무, 나와 세상, 나와 인간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해외 가구 애호가들이 먼저 알아본 그의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나무로 돌아가기’ 정신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옛 장인이 그러했듯, 그는 나무에 덧붙이지 않고 아는 척 으스대지 않으며 오로지 나무가 쌓아온 세월처럼 인간에게 유익한 가구를 만들려 노력한다.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에 있는 작업실 이름도 ‘나무와 끌’이다. 12년 전 돼지 축사를 손봐 들어앉은 뒤 엉덩이 무거운 그는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나무처럼 이곳에 뿌리박고 산다. 작업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는 큰 방, 200여 종이 넘는 목수 연장이 나란한 작은 방, 완성된 가구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갤러리 겸 쉼터가 일자형 작업실을 이룬다. 한쪽 벽을 채운 LP판과 CD, 비스듬히 서 있는 기타 한 대가 그의 음악 사랑을 알려준다. 그의 가구가 음악처럼 리듬을 타고 생활 속에 스며드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항상 작업장을 흐르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그는 나무에게 묻고 귀 기울인다고 했다. “나무야, 넌 무엇으로 되살아나고 싶니.”



 목수 박씨의 관심은 이제 집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미 가구화된 조명기기, 가구화된 음향기기를 만들었다. 가구가 벽이 되고, 가구가 방이 되는 실험도 해봤다. “가구는 집을 작게 짓는 것이라 할 수 있죠. 늘 건축적으로 생각합니다.” 작업실 밖에는 1인용 이동주택도 한 채 서 있다. 원주 지역에서 그와 뜻이 통한 지인들이 부탁한 집을 4채 지은 경험을 늘려갈 계획이다. 한옥의 대청 개념을 도입한 ‘1인 출판을 위한 작업 공간’, 담벼락을 수납장으로 활용해 ‘채 나눔’의 기능을 하게 만든 소형 주택이 화제가 됐다.



 올 6월과 12월에 참가할 바젤과 마이애미 디자인 견본시장 출품작도 이미 마무리 단계다. 원주 지역의 특산품인 옻칠을 접목한 가구다. 원주시 봉산동 옻문화센터의 장인들과 함께 하는 협업이 즐겁다. “원주는 사회운동가이자 생명사상가인 고(故) 장일순(1928~94) 선생의 맥이 흘러내리는 땅입니다. 얼마나 큰어른이셨는지 남기신 책이나 말씀을 보면 요즘 와서 더 절실합니다. 생전에 그 분을 뵙지는 못했지만 그 뜻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와 사람을 잇습니다.”



  원주 글=정재숙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

사진=오종택 기자



◆박종선=▶1969년 충북 제천 출생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졸업 ▶2005년 첫 개인전 ‘나무에게 말을 걸다’ ▶‘소리의 풍경’ ‘소리 나는 목가구’ ‘빛과 소리의 숲’ ‘나무의 시간’ 등 주제 있는 개인전 개최 ▶2009년부터 세계적인 디자인 견본시(아트 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 페어’ 등에 참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서곡리에서 목수 겸 건축가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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