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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콜 잘못 두둔한 건 실수”…사과의 리더십 보여준 버핏

중앙일보 2011.05.02 00:23 경제 1면 지면보기



미국 오마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을 가다



워런 버핏 회장이 지난달 30일 미국 오마하의 주주총회장 밖에서 네브래스카 대학의 머리글자 ‘N’이 부착된 부츠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마하 AP=연합뉴스]



“내 잘못이다. 실적 부진도 인정한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 회장이 주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에서다. 올해 주총은 ‘자본주의의 우드스탁’(1969년 미국 뉴욕주에서 열린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으로 불릴 만큼 축제 분위기였던 과거와 달리 의회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한때 버핏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소콜의 내부자거래 혐의 때문이었다.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CEO였던 소콜은 지난달 버크셔 해서웨이가 엔진오일 제조업체 루브리졸을 90억 달러에 인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소콜은 이 거래가 성사되기 전인 지난 1월 루브리졸 주식을 미리 사뒀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인수 소식이 전해진 뒤 팔아 350만 달러 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잘못 인정한 소통의 리더십=버핏은 지난달 이 사실이 알려지자 “소콜은 루브리졸 인수를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러자 여론이 들끓었다. 버핏은 투명 경영의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회사를 위해 일하다 손실을 낸 건 봐줄 수 있어도 회사의 명예는 털끝만큼 더럽히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이는 1991년 그가 파산 직전의 샐러먼 브러더스 회장으로 취임해 했던 연설로 지금도 투명 경영의 지침으로 통한다. 그랬던 그가 소콜을 감싸고 돌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은 변명 대신 행동에 나섰다. 이사회에 소콜의 혐의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소콜이 회사 윤리규정을 어겼다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왔다. 버핏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주총에서 자신의 과오도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는 “지난 1월 소콜에게 언제 주식을 샀느냐고 물어보지 않은 건 나의 큰 실수(big mistake)였다”고 고백했다. 지난달 소콜의 혐의를 발표하면서도 이를 비판하기보다 덮어주려는 듯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나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이날 1분기 실적 부진도 공개했다. 뉴질랜드와 일본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과 호주의 대홍수, 여기에다 최근 미국 중남부를 덮친 토네이도로 보험계열사가 1분기에만 8억2100만 달러 손실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1분기 순익도 15억11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나 줄었다. 그러면서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 계열사의 영업은 주택사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나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희망적인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핏의 솔직한 사과와 투명한 설명에 경직됐던 주총장 분위기는 다시 축제분위기로 바뀌었다. 뉴욕에서 왔다는 한 주주는 “세계 최고 부자 버핏이 자신의 과오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그의 리더십은 소통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생산적인 것에 투자하라”=값이 뛰고 있는 금이나 상품에 왜 투자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버핏은 발끈했다. “금은 쌓아놓고 어루만지는 것 외에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못한다”며 “금에 투자하는 건 누군가 나보다 더 비싼 가격에 사주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폭탄 돌리기’에서 돈 벌 기회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상품 투자에 대해서도 그는 “현명한 투자자라면 상품가격에 투기하는 것보다는 생산적인 곳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달러가치의 하락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융완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인플레이션이 오더라도 미국에 사는 게 다른 나라보다 나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폈다. 버핏은 현금 보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을 때 즉각 투자에 나서려면 언제라도 돈을 뺄 수 있는 안전자산에 묻어두라는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현재 348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 돈으로 “코끼리(덩치 큰 기업)를 사냥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코끼리 사냥총은 잠시 내려놓으려고 한다”며 초대형 인수합병(M&A)이 당분간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안갯속 빠진 후계구도=소콜의 퇴출로 버핏의 후계 경쟁 판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버핏도 말을 아꼈다. 후계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보험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아지트 자인을 극찬하는 것으로 에둘러갔다. 자인은 “일하는 기계”라며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내비쳤다. 다만 소콜 스캔들을 의식한 듯 그는 “내 후계자는 화살처럼 올곧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인 외에 CEO 후보로는 철도회사 벌링턴 노던 산타페 CEO 매튜 로스, 보험회사 가이코 CEO 토니 나이슬리,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CEO 그레그 아벨, 재보험사 제너럴 리 CEO 태드 몬트로스가 꼽히고 있다.



 회장으로는 장남 하워드를 앉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신 회장은 무보수이며 CEO의 전횡을 견제하는 일만 맡게 된다. 버핏이 함께 맡아온 최고투자책임자(CIO)로는 헤지펀드에서 전격 스카우트해온 스타 펀드매니저 토드 콤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다만 버핏은 이날 “100년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장수했던 사람(old age)”이라고 답해 당분간 회장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오마하 =정경민 특파원



버핏 말말말



“벤 버냉키가 패리스 힐튼과 언제 남미로 도망갈지 누가 아나. 그래서 현금은 안전한 곳에 넣어둬야 한다.”



-현금을 미 국채와 같은 저수익 자산에 묶어 두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금융상품을 팔려고 안달난 월가 투자은행가에게 투자 전망을 물어보는 건 머리 깎을 즈음 이발사에게 머리 어떠냐고 물어보는 거나 다름없는 멍청한 짓이다.” -월가는 언제나 장밋빛 전망만 내놓는다고 비판하면서.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다.” -달러가치 하락을 언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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