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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하라 할 때 제일 화나요

중앙일보 2011.05.02 00:17 경제 18면 지면보기
누군가의 마음을 가장 빨리 알아내는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사흘 뒤가 어린이날이다. 무엇을 사주고,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에 앞서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어린이날 무엇을 하고 싶고, 언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지. 그들의 ‘희로애락’을 들었다.


초등학생 623명에게 ‘7개 문항’ 물어봤더니…

서울 시내 587개 초등학교 56만여 명의 학생(2010년 기준) 중 동서남북 지역별로 뽑은 4곳, 2·4·6학년 2개 반씩 총 623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다. 가락동 가락초등학교, 개포동 개일초등학교, 상계동 계상초등학교, 그리고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다(학교 사정상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 설문조사의 형식을 빌렸으나 엄격한 통계적 방법으로 행한 설문은 아니다.









어린이에게 한 질문과 직접 쓴 대답.<사진크게보기>





설문 조사라기보다 ‘간략 인터뷰’다. 어린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데 주안점을 뒀다. 질문은 7개이고 모두 주관식이다.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장소에 가고 싶은지’ 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조손·한부모 가정 등의 자녀를 위해 ‘부모님’이라는 말 대신 ‘우리 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글=이정봉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



질문 감수=청주교육대학 초등교육과 임진영 교수, 분석 감수=부산교육대학 교육학과 성병창 교수



동생의 영원한 숙적, 언니·오빠











‘어떨 때 가장 화가 나는지’에 대해 아이들 10명 중 3명은 자신의 오빠·언니나 동생 때문이라고 답했다. 단연 1위다.



최민석(10·계상초 4년)군은 “형이 외출금지를 당했는데 엄마한테 내가 불러서 간다고 해서 나와 놓고 나는 내버려두고 형 친구들과 놀러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형이 놀아줄 때는 재미있다”고 했다. 최군은 ‘형 때문에 누명을 썼을 때, 형이 이유 없이 때릴 때’ 가장 화가 난다고 썼다.



오빠·언니는 동생의 딜레마다.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쓴 글씨에는 아이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다른 질문에 비해 이 부분만 유독 길게 쓴 아이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동생들은 주로 언니·오빠가 자신을 막 대하거나 차별받을 때 화가 난다고 했다. ‘언니는 내 물건을 함부로 써서 망가뜨리고, 잊어버려놓고 내가 언니 물건 한 번 쓰는 것에도 짜증낼 때’, ‘형이 내 돈을 가져가 놓고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내게 화를 낼 때’, ‘엄마가 나랑 누나를 차별할 때’ 등의 답변도 많았다.



언니·오빠들도 불만은 있다. 가족이 동생만 감싸거나, 어린 동생이 자신을 무시하는 게 싫다고 한다. ‘동생이 나를 막 때려놓고 도리어 울면서 엄마한테 달려갈 때’, ‘동생이 잘못했는데 나를 혼낼 때’, ‘동생이 나를 무시할 때’ 등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결국은 동생이 손해인 듯하다. 이런 대답이 있었다. 가장 화날 때는 ‘언니가 때릴 때’, 즐겁고 신날 때는 ‘언니랑 놀 때’, 가장 슬플 때는 ‘언니가 안 놀아줄 때’.



부쩍부쩍 자라는 아이들의 감수성



‘어린이’라는 명칭으로 한데 묶이는 2·4·6학년 아이들. 대답을 보니 생각의 차이가 나이 차이보다 더 나는 듯했다. 2학년이 귀엽다면, 4학년은 엉뚱하고, 6학년은 성숙하고 예민했다.



조원익(12·계상초 6년)군은 뉴스에서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봤을 때 “미리 대비했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 김민숙(39)씨는 “원익이가 6학년 올라가면서부터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군은 ‘어떨 때 가장 화가 나느냐’는 질문에 ‘화가 나는 뉴스 속보를 볼 때’라고 답했다.



2학년에서 4학년을 거쳐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아이들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고 자기 생각이 강해졌으며 감정이 풍부해졌다. 가장 즐겁고 신날 때를 ‘친구와 놀 때’라고 대답한 아이의 비율은 학년 순으로 37%에서 41.4%, 48.8%로 높아졌다. 6학년 아이들은 가장 슬플 때에 대해 ‘혼나는 것’보다 ‘가족이 아플 때 더 슬프다’고 했다. 2학년 아이들의 경우 혼날 때 가장 슬프다는 대답이 44%이고, 가족이 아플 때라는 의견은 8%에 그쳤다. 또 고학년 아이들일수록 무시당하거나 억울할 때 화가 난다고 했다. 2학년 아이는 2%만 억울할 때 화난다고 했지만 6학년의 경우는 13.1%에 이르렀다.



가장 기쁜 때를 2학년 아이들은 그저 ‘100점 맞았을 때’라고 대답한다면 4학년은 ‘성적이 오를 때’, 6학년은 ‘열심히 노력해서 성적이 올랐을 때’라고 답한 아이들이 많았다. 6학년 어린이들이 한 대답 중에는 예민한 감수성이 반영된 대답이 꽤 있었다. 슬플 때에 대해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내가 세상에서 필요없다고 느껴질 때’라고 했다. 화가 나는 이유는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대할 때’, ‘나 자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 ‘계획에 없던 게 실행될 때’라고 답했다. ‘화날 때’ 질문과 관련, 두 6학년 어린이의 대답은 눈길을 끌었다. 가장 슬플 때는 ‘오빠가 때릴 때’, 가장 화날 때는 ‘동생이 때릴 때’(계상초 6년). 가장 슬플 때는 ‘엄마에게 혼날 때’, 가장 화날 때는 ‘엄마에게 이유 없이 혼날 때’(개일초 6년).



바쁜 아이들, 바쁜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몇몇 아이들은 직장인이나 할 법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산더미 같은 업무에 ‘놀토’만 기다리는 회사원의 모습이 요즘 아이들에게서 언뜻 보였다. 한 아이는 ‘숙제를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때’ 화가 난다고 했다.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어디 놀러 가는 게 아니라 ‘학교와 학원 안 가기’나 ‘집에서 쉬기’를 든 아이도 18명이었다.



거짓말 할 때 우리 가족이 내게 화를 낸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구체적 상황을 쓴 것의 대부분은 ‘학원을 몰래 빠지고 거짓말 했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기쁜 때로 금요일 저녁을 든 아이가 5명이었고 가장 화날 때가 일요일 저녁이라고 대답한 아이가 4명이었다.



저학년 아이들의 대답 중에는 바쁜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아빠를 배려심 강한 사람으로 여겼다. 가장 슬플 때로 ‘혼날 때’를 대답한 설문에서, 혼내는 주체는 대부분 ‘엄마’였다. ‘엄마에게 돈을 뺏길 때 가장 화가 난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가 화내시면 저를 위로해 주세요’라고 깜찍한 대답을 쓴 아이도 있었다.



가장 즐겁고 신날 때와 기쁠 때로 ‘아빠가 안아줄 때’, ‘아빠랑 같이 잠자기’, ‘아빠가 회사에서 일찍 올 때’ 등으로 대답한 아이가 2학년은 13명, 4학년은 5명이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 마음 얼마나 잘 알까



엄마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까. 아이가 설문대상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모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아이들이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이다. 아이들의 예상 대답을 맞혀달라고 했다. 2~6학년의 자녀를 둔 학부모를 학년당 2~5명씩 배분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아이의 생각을 잘 헤아리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아이가 어린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가장 많이 꼽은 대답은 ‘가족과 놀고 싶다’(11명·55%). 아이의 생각과 일치했다. ‘공부를 열심히 할 때’(9명·45%) 가족이 좋아한다는 것, ‘친구와 놀 때’(11명·55%) 가장 즐겁고 신난다는 것 등 7개 중 5개 질문의 1위 대답이 일치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가장 기쁠 때로 ‘칭찬받을 때’(6명·30%)를 첫째로, ‘선물 받을 때’(4명·20%)를 둘째로 꼽았지만, 아이들은 ‘가족과 놀러 갈 때’와 ‘시험을 잘 보거나 상을 탈 때’를 1·2위로 꼽았다. 또 우리 가족이 화낼 때로 학부모들은 ‘거짓말할 때’(6명·30%)를 들었지만, 아이들은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할 때’를 꼽았다. 큰 차이를 보인 질문은 ‘아이가 화날 때’였다. 아이들은 ‘친구가 놀리거나 욕할 때’를 2위(140명·22.5%)로 꼽았지만, 이를 예상한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부산교대 교육학과 성병창 교수는 “엄마들은 대체로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어떤 친구와 놀고 어떻게 친해졌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의 인지발달만큼 사회성 발달에도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형제·자매 다툼의 경우, 예전보다 현대에 들어 아이들이 각방을 쓰므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더 자주 생긴다”며 “잠은 다른 방에서 자더라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한방에서 하게 하는 등 서로 함께 생활하면서 배려하는 방식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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