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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하려면

중앙일보 2011.05.02 00:09 종합 37면 지면보기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하고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으나 미국과 한국에서 외면당했다. 그가 서울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그는 연이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를 통해 남북대화에 임하는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한국정부의 정당한 요구를 도외시하고 북한의 대화공세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는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도 동의한 사항이다. 둘째는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강조해온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를 ‘제3자’라고 일축한 것은 남북문제에서 우리의 주도권 행사에 대한 단호한 의지 표명이라 할 수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제안은 힘들더라도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 올바른 남북관계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한국정부의 고심을 간과한 미봉책이라 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여기저기서 중재자를 자임하며 묘수를 제시하거나 획기적으로 돌파구를 열겠다고 직접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지름길만 찾다가는 더 큰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화공세에 미혹되지 않고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도(正道)는 무엇인가? 우리가 주도하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통일 청사진을 당당히 제시하고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통일의 종착지는 남북한 주민 모두가 인권과 복지를 향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 주도로 북한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편입돼야 할 것이다. ‘우리 주도 통일 프로세스’는 현재의 2국가 2체제→ 북한에 개혁·개방적인 정권 등장→ 북한의 체제전환이 이루어진 2국가 1체제→ 제도적 통일이 이루어진 1국가 1체제의 4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물론 단계별 프로세스가 반드시 점진적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둘째 단계가 매우 짧은 시간에 끝날 수 있고, 심지어 동구 사회주의 체제전환에서 보듯 아예 첫 단계에서 셋째 단계로 진전될 수도 있다. 물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몇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둘째 단계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첫 단계에 머무르면서 지금처럼 완강히 변화를 거부하는 한 우리가 남북관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의미 있는 통일 프로세스는 북한에 개혁·개방 정권이 등장하는 둘째 단계에 진입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대규모 남북경협이 가능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등장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주도 통일 프로세스’의 핵심은 북한이 우리와 동일한 체제로 변화되면서 2국가 1체제로 진입한 셋째 단계다. 이 단계에서 우리 정부와 체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정권과 협력해 주도적으로 통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의 체제전환 없이도 단순히 남북 교류협력만 확대하면 통일은 점진적으로 온다는 과거의 경협 만능주의와 구별된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북한에 들어선다면 통일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고 통일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북한주민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통일 지향적 남북경협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단지 교류협력의 양적 확대를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결연한 의지와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도하는 분명한 통일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앞장서 국민의 에너지를 모으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통일은 그런 지도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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