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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독설

중앙일보 2011.05.02 00:03 종합 39면 지면보기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역사상 최악의 독설가로 통한다. 칸트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선배의 사상을 무참히 짓밟는다. 심지어 “생명력에 대해 칸트는 논문을 썼지만 나는 장송곡을 써야 할 상황”이라며 “생기에 대한 (칸트의) 과다한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두통으로 다가온다”고 적었다.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도 유머 못지않게 독설로도 이름을 날렸다. 베시 브래독이란 여성 의원이 언쟁 끝에 처칠을 거칠게 공격했다. “당신은 취했다. 게다가 구역질 나게 취했다”고.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은 못생겼다. 게다가 구역질 나게 못생겼다. 한데 난 아침이면 깨지만 당신은 계속 추녀로 남을 거다”라고. 이처럼 자극적인 독설은 인격을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럼에도 동서고금의 정치판에서는 의도적으로, 자주 등장해왔다. 표현이 독할수록 세인의 뇌리에 오래 남는다는 걸 정치인들이 아는 탓이다.



 실제로 윌리엄 커시먼 등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분노·공포·행복감 같은 감성적 자극이 강할수록 신경조직이 활발해져 기억력도 월등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흉기를 든 강도에게 당했을 경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때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도 당시 느꼈던 극도의 공포감 때문인 셈이다.



 올 들어 미국에서 정치인의 막말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개브리엘 기퍼즈라는 민주당 여성 하원의원이 총격을 당한 사건이 단초가 됐다.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지난해 건강보험법안 처리를 앞두고 “이제 총을 재장전하자”는 선동적인 글을 올렸던 게 밝혀졌던 것이다. 게다가 페일린이 꼽은 공격 대상에 기퍼즈가 포함됐던 게 확인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미 정계에서는 막말 자제 분위기가 확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독설이 미국 정치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출생지 문제에 이어 학벌 시비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가 이젠 한국을 두고 독설을 퍼붓고 있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의 한 모임에선 “한국에 대해 우리(미국)가 보호해주는 데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그러면 그들은 2분 내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황당한 막말이다. 하나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독설 작전이 통했는지 요즘 가장 잘나가는 공화당 대선주자가 트럼프라니 말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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