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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차라리 노무현을 벤치마킹하라

중앙일보 2011.04.28 19:56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기자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분명 민생이다. 하지만 경제정책과 민생을 등치할 경우 ‘단기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여론과 정치권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역대 정부가 경제체질 개선이라는 ‘가장 중요하지만 덜 시급한’ 과제를 뒷전으로 미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친화적’이고 포퓰리즘을 지극히 경계하는 현 정부 경제부처의 어느 장관이 했을 법한 얘기다. 하지만 아니다. 참여정부 국정 브리핑 특별기획팀이 쓴 『노무현과 참여정부 경제 5년』에 나오는 말이다. 대선 패배자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 정책 당국자도 곱씹어볼 만하다.



 참여정부는 잦은 말 실수와 이념 과잉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했고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부자와 서민을 나누는 편가르기에 열중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등에 업고 손쉽게 권력을 잡았다. 그래서 현 정권 초기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부와 반대라면 무조건 괜찮다)’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정책기조는 참여정부와 확연하게 각을 세웠다.



 하지만 재·보선 패배에 넋 놓고 있는 지금 정부가 참고할 만한 게 꽤 있다. 한때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이에게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눈을 치뜨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견제 발언으로 재계에서 “친기업이라던 MB 정부,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심하다”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일정 부분 대기업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지금 정부도 상생과 동반성장을 강조한다. 참여정부는 상생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2006년 제정했다.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법과 제도를 통한 접근’을 한 셈이다. 물론 현 정부도 하도급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적 접근을 게을리하지 않지만 정책 당국자의 ‘구두 개입’을 통한 분위기 조성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장과 동반성장위원장, 대·중소기업 사장들이 동반성장 협약을 맺으면서 찍은 기념사진들을 여럿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못이 있다면 재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법적 처벌이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테면 선물투자로 거액 손실을 본 재벌 총수는 도덕적 비난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세무조사 과정에서 얻었다는 그런 내밀한 개인정보가 흘러나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신년 특별연설에서 “민생이라는 말은 송곳”이라며 “지난 4년 동안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금 정부에도 ‘민생은 송곳’일 것이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물가를 잡고 싶었을 것이고, 대기업을 압박해 동반성장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가장 중요하지만 덜 시급한’ 과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아닐지. 과거는 언제나 최고의 선생이다.



서경호 경제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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