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나라 심장부서 재기 … 손학규, 야권 대선주자 굳혔다

중앙일보 2011.04.28 01:58 종합 3면 지면보기



정치 생명 건 분당을 승리



재·보선 분당을 출구조사가 손학규 후보의 우세로 나오자 서울 당사에서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조배숙 최고위원, 정세균 전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 [조문규 기자]





정치 생명을 건 ‘손학규의 대도박’은 성공적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한나라당에 몰표를 쏟아주던 한나라당의 ‘심장부’에서 얻은 정치적 소득이다. 그는 이제 야권의 대표주자로 확실하게 부상하게 됐다. 경쟁자였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 터라 그의 도전이 더욱 성공적으로 비춰진다.



 손 후보의 이번 분당을 출마를 민주당 사람들은 “‘사지(死地)’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는 그는 선거전 내내 상대 후보 측에게서 ‘배신자’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리던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에서 승리함으로써 ‘배신론’을 잠재웠다. 한나라당 탈당 전력 시비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의 분당을 출마는 4·27 재·보궐선거전 내내 최대 이슈였다. 손 후보는 2009년 10·28 재·보궐선거 당시 수원 장안에 출마하란 당내 권유를 뿌리친 바 있다. 출마만 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관측에도 불구하고 “측근(이찬열 현 의원)이 그 지역에서 뛰고 있는데, 내가 출마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문학진 의원 등이 “손 대표가 직접 분당에 출마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한 달여간 숙고한 끝에 지난달 30일 출마의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뒤 그의 여론 지지율은 4~8%를 오가면서 차기 주자로서 뚜렷한 인식을 주지 못했다. 김부겸 의원은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출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후보는 이후 “중산층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13일간의 선거운동 동안 손 후보는 야당의 선거 단골 메뉴인 ‘정권 심판론’ 대신 줄기차게 ‘중산층’을 외쳤다. 손 후보 측은 출마를 선언한 이후부터 선거 당일까지 내부적으론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손 후보는 상황이 불리한 듯이 돌아가도 처음 세운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분당우파를 겨냥해 그의 잠재적 강점으로 간주됐던 ‘중도적 이미지’를 계속 전면에 내세웠다. 현장 선거를 총괄 지휘한 이인영 최고위원은 “우리는 30~40대 중산층 넥타이 부대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이젠 이슈를 만들어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됐지만 손 후보는 이런 제안을 일축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당의 총력 지원을 받았어도 손 후보는 ‘나 홀로 선거’를 끝까지 고수했다. “의원들을 집결시켜 세몰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됐지만 손 후보는 이런 제안을 일축했다.



 결국 이런 전략은 적중했고 분당을 승리를 통해 손 후보는 내년 총선·대선 가도에 충격파를 던졌다.



 손 후보는 재·보선 기간에 또 하나의 정치적 소득을 얻었다. 그는 순천 지역에 민주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 방안(‘순천 무공천’안)을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한편으론 보수층이 두터운 분당을 지역에 직접 뛰어들어 ‘중산층 잡기 전략’으로 나서 승리를 거두고, 야권 연대를 성사시키면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 진영과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양 날개’를 움켜쥔 형국이다. 강훈식 손 대표 정무특보는 “한국 정치에서의 ‘진보 대 보수’ 간 편가르기 구도를 통합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후보는 2007년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안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시베리아”라는 발언에 격분해 탈당했다. 이후 그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 패배와 2008년 총선에서의 패배 등 두 차례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그로선 세 번째 좌절이 될 수도, 야당의 대표 주자로 일어설 수도 있는 기회였다. 기로에서 그가 움켜쥔 것은 결국 ‘기회’였다.



글=채병건 기자, 성남=민경원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손학규
(孫鶴圭)
[現] 민주당 국회의원(제18대)
[現]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1947년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