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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역발상

중앙일보 2011.04.28 00:27 종합 35면 지면보기








파리의 개선문(L’Arc de triomphe)은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는 건축물로 유명하지만 파리지앵(Parisien)에겐 곡예운전 시험장으로도 악명이 자자하다. 개선문에는 샹젤리제를 비롯해 타원형 형태로 12개의 도로가 뚫려 있다. 이 길로 수백 대의 차량이 뒤엉킨 채 동시에 밀려들고 빠져나간다. 교통신호등도 없다. ‘오른쪽 차량이 우선’이라는 단 하나의 원칙만 존재한다. 나의 우측에서 차량이 치고 들어오면 양보하자는 약속이다. 나머지는 운전자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신호등 없는 개선문 주변 도로는 오늘도 이렇게 돌아간다.



 아예 교통신호등을 없애면 어떨까. 네덜란드 북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드라흐텐(Drachten)이 이런 의문에 도전한 건 2003년이다. 신호등 없는 도시라는 기발한 구상이다. 운전자들이 신호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돌발적 위험요소를 등한시하게 돼 사고가 빈발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신호등, 제한속도 등의 표지판을 모두 제거했다. 시민들은 걷든, 자전거를 타든, 자동차를 운전하든 신호등 대신 서로를 배려하며 제스처와 눈빛으로 소통했다. 교통흐름은 훨씬 좋아졌고, 사고는 뚝 떨어졌다. ‘안전하지 않은 것이 안전하다(Unsafe is safe)’는 드라흐텐의 실험은 영국·독일·벨기에·덴마크 등 유럽의 중소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규제 과잉은 시야협착(tunnel vision) 현상을 유발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진단한다. 터널 속에서 입구를 통해서만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속 좁은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편의와 이익만 좇는 몰염치한 부류들 말이다. 신호등과 교통표지판이 수없이 설치돼 있지만 꼬리물기·끼어들기·과속이 성행하는 이유다. 운전자들은 교통표지판의 70%를 무시한다는 외국의 조사 결과도 있다.



 경찰이 신호등 변경을 추진하면서 ‘국제표준’을 들먹였다. 애매모호한 국제기준은 멀쩡한 신호등을 교체하기 위한 합리화 명분에 불과한 느낌이다. 세금을 축내며 자꾸 뜯어고치면 괜스레 의심을 살 수 있다. 업자만 배불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익숙하고 단순한 게 좋은 법이다. 군더더기가 붙으면 산란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번잡한 세상이다. 법정 스님도 생전에 단순함을 설파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무(無)신호등 체계를 도입하는 건 무리다. 그래도 신호등을 줄이는 인간친화적 역발상을 한번쯤 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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