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철호의 시시각각] 곽승준과 유시민

중앙일보 2011.04.28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대통령 직속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대기업 견제를 위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원래 ‘연금 사회주의(pension socialism)’의 국내 특허권은 2004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갖고 있다. 2007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도 똑같은 발언을 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보수인 이명박 정부에서, 자칭 이 대통령을 어릴 적부터 삼촌처럼 따라온 ‘특수관계’라는 곽 위원장의 입에서 연금 사회주의가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주주로서 당연한 일이다. 의결권을 포기한다면 차라리 우선주를 샀어야 했다. 더 많은 배당에다 주식값은 절반 아래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06년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KT&G의 경영권을 위협했을 때 백기사(白騎士)로 나서 기존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듬해 동아제약에서 가족 내분이 일어나자 지분 5%의 국민연금이 강신호 회장을 지지해 둘째 아들의 쿠데타를 진압했다. 이런 일을 두고 누가 뭐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연기금의 의결권은 양날의 칼이다. 국민의 미래를 담보한 연기금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최우선이다. 위험자산인 주식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주식을 사더라도 경영참가보다 재무적 투자(의결권 행사보다 수익을 추구)가 기본이다. 기업 경영은 연금 운용팀보다 경영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다. 절박한 상황이 아니면 의결권 행사도 절제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만약 수익성만 따진다면 국민연금은 곽 위원장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름값 인하가 대표적 사례다. “왜 정부의 압박에 밀려 연기금에 손해를 입히느냐”며 정유회사 경영진을 몰아내야 옳다.











 곽 위원장이 입에 올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도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애플은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의 지도를 받아 아이폰 대박을 터뜨린 게 아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에서 죽을 쒔다고 닦달하는 연기금도 보지 못했다. 거꾸로 요즘 캘퍼스의 최대 관심사는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다. 그가 퇴진하면 애플의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애플이 국내기업처럼 ‘동반성장’과 ‘초과이익공유제’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될까? 잡스는 자연수명이 다하기 전에 쫓겨날 게 분명하다.



 국민연금은 이미 곽 위원장의 기대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부터 의결권 축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접 투자보다 펀드에 돈을 타는 간접투자 비중을 높이는 중이다. 20~30년 앞을 내다본 조치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이미 ‘연못 속의 고래’다. 특정기업 지분이 5%를 넘으면 일일이 주식거래를 공시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들이지만 2035년쯤부터 주식을 팔아 연금을 내줘야 한다. 그때 주식 매도에 따른 줄초상을 예방하는 장치가 간접투자다.



 우리 국민연금은 ‘저(低)부담-고(高)급여’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기금 운용에 정부 입김이 너무 세고 전문성은 떨어지는 게 해묵은 숙제다. 이대로 방치하면 온 국민의 미래가 곪을 대로 곪아간다. 곽 위원장의 임무가 국가의 미래기획이라면 먼저 국민연금 개혁에 매달리는 것이 올바른 수순으로 보인다. 이미 국민연금은 139개 국내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있다. 경제학 전공인 곽 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기업 지배로 시장경제의 교란을 우려하는 국제 경제학계의 최신 흐름을 모를 리 없다. 그나마 유시민 장관은 염치라도 있었다. “해외 자본이 삼성전자나 포스코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다면…”이란 조건을 달았다. 매우 애국적이다. 반면 곽 위원장은 특정 기업들을 지목하며 “효과적인 견제 장치”라 못 박았다. 국민의 미래인 연기금을 관치(官治)에 동원하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묻어난다. 한때 유 장관은 “맞는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는 빈축을 샀다. 그렇다면 지금 곽 위원장에겐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



이철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