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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반쪽 세상만 보는 카터

중앙일보 2011.04.24 20:1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내일 평양에 들어간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카터는 평생 반쪽 세상만 봐왔다. 박정희의 개발·애국 독재는 비판하면서도 김일성·김정일의 부패·세습 독재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3대 세습의 가혹한 독재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평화의 중재자라는 환상에 빠져 김정일의 위장평화 공세에 장단을 맞춰줄 공산이 크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 가난이라는 두 개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한·미 동맹으로 북한을 막고 개발독재로 경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동맹국 지도자 카터는 그런 박정희에게 미군철수와 인권이라는 두 개의 칼을 들이댔다. 미군철수는 동맹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장난이었다. 미 국방부와 주한미군의 지휘부는 카터가 대통령 선거 때문에 그러는 것이고 당선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터는 집권하자마자 철군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 반(反)정부 인사 석방을 요구했다.



 그 전까지 미국의 대외적인 인권정책은 현실적이었다. 공산체제의 인권탄압은 공격하면서도 개발도상(開發途上) 동맹국의 불가피한 독재에 대해선 비판을 유보해왔다. 그런데 카터는 정반대였다. 그의 인권외교는 어지러운 춤이었다. 카터는 한국 같은 동맹국의 인권문제는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소련·북한 같은 공산국가의 인권봉쇄는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 카터의 비현실적인 인권외교는 미국에 불리한 상황을 낳았다. 강력한 반공 동맹인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국왕이 망명하고 극단적인 반미 정권이 들어섰다.



 70년대 후반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75년 4월 월남이 패망했다. 김일성은 군비를 증강했으며 충격적인 도발로 한·미 동맹을 시험했다. 76년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군 장교들을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그런데도 카터는 김일성 대신 박정희를 압박했다. 결국 안팎의 반대로 철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카터의 4년은 박정희와 한국인에게 힘든 세월이었다.



 94년 북한의 핵개발 선언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닥쳤다. 김일성의 초청으로 카터는 평양에 갔다. 두 사람의 회동은 일단 북·미 협상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래서 카터는 지금도 자신의 방북이 ‘위기의 돌파구(breakthrough)’였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돌파구가 아니었다. 북한은 핵 동결에 합의하고도 몰래 우라늄 농축을 이용한 핵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김일성은 카터를 이용해 유엔의 제재라는 위기를 벗어났으며 핵개발을 위한 시간과 달러를 번 셈이됐다. 물론 카터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북한에 속았다. 하지만 카터는 주도적으로 속았다. 그가 평양에 가지 않고 유엔이 북한을 제재했다면 상황은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터는 북한 편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94년의 상황에 대해 “미국은 조그맣고 고립돼 있으며 가난하고 불가사의한 공산주의 국가를 유엔을 통해 경제적·정치적으로 심각한 제재를 가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카터센터의 제 1 모토(motto)는 인권이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북한의 인권탄압 얘기는 거의 없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는 모처럼 보조를 맞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카터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김씨 가문과 카터의 대(代)를 이어가는 미망(迷妄)의 탱고다. 카터는 해군장교 출신이다. 그는 북한을 방문한 후 한국에 오면 천안함 수병들이 묻힌 국립묘지를 찾는 것이 어떨까. 한반도의 진실은 김정일의 미소가 아니라 46인의 묘지에 있다는 걸 카터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늦었지만 87세의 카터에게 새로운 개안(開眼)이 될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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