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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예보 실력은 국력, 미래 블루오션 전진 기지

중앙선데이 2011.04.24 11:58



사색이 머무는 공간 <60> 서울기상관측소(옛 서울측후소)









기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순간적인 대기현상이다. 그날그날의 비·구름·바람·기온 등의 기상 상태인 날씨를 장기간 종합한 것이 기후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00년 만의 폭설과 살인적인 폭염, 태풍과 대지진이 예고 없이 일어난다. 일본의 지진-쓰나미-원전사고는 인간의 공포심을 야기했다. 비나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까지 방사성물질이 날아올 여지가 있어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조금이라도 미심쩍거나 오보라고 생각되면 여론이 들끓는다. 수퍼컴퓨터·기상위성·수치예보모델 등 최첨단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2일 지구의 날에 즈음해 서울기상관측소를 찾았다. 한국 기상인의 살아 있는 전설 김동완(76) 전 통보관과 함께였다. 1992년 은퇴할 때까지 33년간 라디오와 TV 기상뉴스를 독점하다시피 해 온 그는 여전히 구수한 입담과 유머가 넘쳐났다.



중앙기상대, 1953년 인천서 서울로

“지금은 모델 뺨치는 늘씬하고 볼륨감 넘치는 미인들이 기상캐스터를 하지요. 그들은 날씨 전달자입니다. 나는 기상청 출신 기상전문가로서 방송을 통해 날씨를 전달한 게 아니라 해설했습니다. 복덕방을 드나들며 익힌 속담을 그때그때 적절히 섞어 가며 생활기상뉴스를 개척했어요. 한창때는 연예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죠. 시절이 변해 이제는 제아무리 탁월한 기상전문가라도 남자가 하면 채널을 돌릴 거라더군요. 지금은 그런 시대지요.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어요.”







서울시교육청 청사 위에 자리 잡은 그의 옛 근무지로 가는 길은 가풀막이었다. 바람 부는 그 길에 꽃비가 내린다. 왔다 싶으면 이내 가 버리고 마는 짧은 봄날, 흐드러진 저 꽃가지를 뒤흔드는 봄바람이 얄궂다. “오늘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입니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봄 날씨는 하루에도 서른여섯 번이나 변한다고 합니다. 봄바람은 풍향이 자주 바뀌어 본적도 번지수도 없습니다. 낮에는 따뜻했다가도 퇴근할 때는 쌀쌀한 바람이 변덕스럽게 부니 여벌의 스웨터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멘트가 이어졌다. 그가 봄철에 했던 방송 멘트 가운데 하나다. 원고 없이 하는 멘트가 날마다 달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과는 비할 바 없이 오보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언덕 위의 하얀 집 앞에 다다랐다. 1907년 일본 육군기상대가 자리 잡았던 공간(해발 86m)에 서 있는 서울측후소다. 인천에 중앙기상대가 있던 시절 조선총독부가 직할하던 곳이다. 근대기상의 역사에도 어김없이 일본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산과 평지 중간쯤 되는 높이라서 서울시내가 잘 조망된다. 앞마당 아래로 성벽 공사가 한창이다. 본래 남쪽 방향 정동길에서 올라온 성벽은 서울기상관측소를 지나 북서쪽 인왕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팽창한 회색도시에 의해 성벽의 흔적이 대부분 지워지고 실밥처럼 간간이 복원되고 있다.



뜰에 심은 나무들은 모두 계절 관측 표준목이다. 벚꽃·개나리·진달래·복숭아가 피었고 매화가 져 간다. 이곳 표준목에 꽃이 피어야 서울에 그 꽃이 핀 것으로 간주한다. 강수·강설·온도·습도·기압·풍향·풍속·일사량 등의 기상정보를 바로 이곳에서 하루 24시간 정각에 수집한다. 컴퓨터를 통해 기상청 중앙센터에 보고되고 당일 서울시의 표준 날씨 기록이 된다. 서울 다른 곳에 비가 내렸어도 이곳 마당 우량계(雨量計)에 빗물이 고이지 않으면 서울에 비가 오지 않은 것이 된다. 한강 결빙은 오전 6~7시에 한강대교 노량진 방향 2~4번 교각 사이 상류 100m 지점이 얼어야 결빙으로 친다. 한강대교가 선정된 까닭은 이곳으로부터 가까워 접근성이 좋아서다.



정확한 기상예보는 국력을 상징한다. 산업 분야에서는 ‘날씨경영’이 도입됐다. 조선소나 전자업체, 빙과업체, 여행업계, 패션계 등이 기상마케팅을 한다. 일기예보의 역량은 세 가지 요건에 의해 결정된다. 수치예보모델의 성능 40%, 관측자료의 다양성 32%, 예보관의 역량 28% 순이다. 수치예보모델이란 지구를 3차원적인 격자로 나눠 각 격자점에서 날씨를 지배하는 물리방정식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하는 국가는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 180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해 13개국이다. 그 가운데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가 1위, 영국 2위, 일본 3위이며 한국은 9위다.



시스템 좋아도 예보관 실력 더 중요

기상청은 내년까지 세계 6위 수준의 수치예보 정확도를 목표로 잡고 있다. 5월에는 서해안에 기상관측선도 띄운다. 기상 선진화는 1441년 세종대왕 시대에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고 강우량을 계량한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측우기는 수표(水標)와 함께 자랑스러운 조선 기상학의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서운관(관상감)에서 천변현상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해 왔다. 그러다 1884년 조선의 외교고문 묄렌도르프가 인천항과 원산항 세관 구내에 기상관측기기를 설치해 관측을 개시했다. 근대화 개혁의 일환이었다.



1887년에는 부산세관에서도 관측이 시작됐고 이 업무는 1904년까지 17년 동안 이어졌다. 그 무렵 일본은 부산에 간이 기상관측소를 설치, 매일 3회 데이터를 도쿄로 전송해 일기예보에 활용했다. 기상자료는 일제의 군사작전상 매우 중요한 정보이기도 했다. 러시아 역시 인천·부산·원산에서 관측한 기상자료를 러일전쟁 직전까지 자국에 보고했다.



1904년 3월, 일본은 인천 총독부관측소에서 한반도 기상업무를 총괄한다. 메이지유신으로 서구의 기상학을 도입한 일본은 이를 한국에 이식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초까지 기상 업무는 일본인 직원들이 맡았다. 한국인 기상기술자는 20여 명에 불과했다.



1939년 7월 조선총독부관측소는 조선총독부기상대로 개칭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립중앙관상대가 출범한다. 인천 개항장 응봉산(자유공원) 정상에 있던 국립중앙관상대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사격으로 파괴되면서 귀중한 기상자료들이 불타고 만다.



1953년 서울로 이전할 때까지 반세기 동안 인천은 한반도 기상관측의 중심이었다. 인천기상대는 시민에게 날씨를 알리는 방법으로 낮에는 깃발을, 밤에는 색깔 전등을 사용했고 낮 12시에 대포를 쏘아 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응봉산은 오포산으로 불렸다.



한국은 1904년을 근대기상 원년으로 삼고 있다. 데이터의 연속성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주체적으로 기상관측을 시작했던 1884년을 원년으로 삼아도 무방해서다.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다. 하늘이 친구라면 우선 친구의 표정을 잘 헤아리고 그 마음을 읽어 내야 한다. 그래야 하늘 같은 국민을 불편 없이 섬길 수 있다. 문제는 하늘을 친구 삼는 일의 어려움이다.



사청사우우환청(乍晴乍雨雨還晴)

천도유연황세정(天道猶然況世情).

“잠시 개었다 비 내리고 비 내리다 다시 갠다.

천도가 이럴진대 하물며 세상인심이야.”



조선의 천재 문인 매월당 김시습의 절창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체계는 하늘과 인간의 밀접한 상관성을 근간으로 한다. 하늘, 곧 천도(天道)에 준거해 인륜(人倫)이 정립된다. 인간의 도덕규범은 사회적 약속이기에 앞서 자연법칙이 낳은 당위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와 24절기에는 천체의 운행과 같은 법칙성이 있다. 그 법칙성이 깨지거나 변주하면 혼란에 빠진다. 근래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한결같아야 할 천도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상학은 미래를 예측하는 블루오션 산업이다. 일기예보의 사회적 가치는 무한하다. 아무리 시스템이 선진화돼도 그것을 운용하는 예보관의 역량이 달리면 오보를 피할 수 없다. 오보를 비난하거나 변명하기보다 노하우가 축적되도록 짐짓 기다려 주고 당당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주변국과의 정보 교환도 필요하다.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처럼 자연재난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천재(天災)가 인재(人災)와 연결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김종록 객원기자·작가 kimkisa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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