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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의 90%로 가속하면 신물질 창조 가능해져 생명ㆍ나노ㆍ우주산업 근간

중앙선데이 2011.04.24 04:04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양성자 가속기















1990년 미국 IBM사가 첨단의 전자쇼를 벌였다. 크세논(Xe) 원자 35개로 회사 이름을 쓴 것이다. 원자 하나의 크기는 100억 분의1 m, 나노의 10분의 1이다. I자는 9개, B와 M은 각각 13개 원자가 사용됐다. 이 ‘원자를 하나씩 떼는’ 기술은 분자에 먼저 적용돼 ‘분자몰이’라는 나노기술 혁명을 일으켰다. 나노기술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화하고, 타이어도 더 질기게 만들며, 심지어 환경정화제도 만든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반도체 메모리 제조에도 필수다.



이런 반도체 가운데 ‘나노 스트레인드 SOI 웨이퍼’라는 게 있다. 이 웨이퍼를 쓰면 처리 속도가 40% 빨라지고 전력소비와 에러는 75%까지 줄인다. 고가의 디지털미디어제품ㆍ인공위성ㆍ국방장비 등 최첨단 분야엔 필수다. 그걸 더 개량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인데 핵심은 ‘더 얇게’ 다.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의 최병호 단장은 “원자핵 5개 정도 두께로 웨이퍼를 잘라낼 수 있다면 꿈의 웨이퍼가 된다”고 했다. ‘양성자 칼’의 등장이다. 의료 쪽은 더 활용도가 많다. 눈 수정체 안쪽 깊이 자리 잡은 안구 암 흑색종 치료가 어렵다. 현재의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는 방사선이 지나가는 길의 세포를 손상시키는 부작용이 심하다. 이처럼 손대기 어려운 부위를 ‘양성자 폭탄’이 치료한다. 몸속으로 10㎝쯤 들어가 에너지를 폭발시켜 주변을 태우거나 분자를 자르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국립암센터에 있는 사이클로트론보다 더 향상된 치료법이다.



양성자는 가속기를 거쳐야 쓰임새를 찾는다. +전하를 갖는 양성자에 전기장을 걸면 -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운동에너지가 생긴다. 이를 반복해서 엄청난 속력으로 가속된 양성자를 다른 원소ㆍ원자에 충돌시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표면 가공을 예로 들어보자.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도 분자ㆍ원자 수준으로 확대해 보면 아주 거칠다. 그럴 때 가속된 양성자를 충돌시켜 분자나 원자를 떼내면 완벽하게 평탄해질 수 있다. 양성자사업단의 김귀영 박사에 따르면 양성자 속력이 초당 500㎞면 분자ㆍ원자를 낱개로 떼내는 ‘스퍼터링’이 가능하다. 5000㎞면 양성자가 충돌해 박혀 물성을 바꿀 수 있다. 반도체 도핑, 나노 결정 제조에 사용된다. 5만㎞면 유전자의 원자핵과 반응해 신종 유전자원을 만든다. 광속의 90%쯤 되는 초속 26만㎞면 소립자 반응을 일으켜 신물질을 생성하거나 기존 제품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양성자 가속기는 ‘기술 집약체’다. 가속에 쓰이는 전자석과 자동제어 기술은 양성자들의 방향을 잡아준다. 초정밀ㆍ초전압 기술은 이동로를 매끄럽게 해준다. 고진공ㆍ초전도ㆍ극저온 기술은 양성자 진로에 방해물을 없앤다. 이런 기술은 곧바로 학술 연구와 의료ㆍ산업ㆍ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양성자 기술이 정보ㆍ생명공학ㆍ나노기술ㆍ환경기술ㆍ우주기술 같은 첨단 산업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양성자 가속기는 물질의 근본 입자를 탐구하는 장비로 시작됐다. 1930년대 ‘사이클로트론’이라는 가속기가 최초로 나왔다. 미국ㆍ소련ㆍ유럽ㆍ일본이 앞다퉈 가속기를 개발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핵무기 생산에도 동원됐다. 이후 가속기는 대형으로 진화, 학문과 산업 발전에 공헌했다. 반물질ㆍ반양성자를 발견했고, 양성자가 3개의 쿼크와 쿼크들을 묶는 글루온 입자로 구성됐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런 작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속속 노벨상을 받았다.



가속기는 사이클로트론(원형, 20MeV 이하의 전압으로 가속)-싱크로트론(원형, 1TeV까지 가속)-선형 가속기 형태로 발전해왔다. 현대 선형 가속기는 양성자를 대량 생산한다. 최대 선형 가속기는 1㎞까지 되는데 길수록 양성자의 에너지를 높일 수 있고 중간에 뽑아 쓸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 세계 최대 가속기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강입자충돌기(LHC)다. LHC는 제네바 근교 100m 지하, 둘레 27㎞ 터널에 들어 있다. 선형 가속기와 다른 점은 양성자를 다른 분자ㆍ원소에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자끼리 충돌시키는 것이다. 빛의 속력의 99.999% 가속된 양성자를 서로 충돌시켜 빅뱅(우주 탄생) 이후 1조 분의 1초 뒤를 연구하려 한다.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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