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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창출? 디자이너보다 연예인에게 맡겨라

중앙선데이 2011.04.24 01:50 215호 28면 지면보기
엠넷(Mnet) 채널에서 방송된 서인영의 론치 마이 라이프의 한 장면. 니나리치 측은 “서씨가 파리 본사를 방문하고 직접 가방 디자인에 참여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젊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Mnet 제공]
지난달 니나리치 액세서리 매장에 ‘서인영 백’이 등장했다. 가수 서인영씨가 니나리치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해 만든 가방이다. 서씨가 제일모직에 출근하고 파리 본사를 방문하는 등 디자인에 참여한 과정은 엠넷(Mnet) 채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론치 마이 라이프(Launch My Life)’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연예계의 소문난 패셔니스타인 서씨가 만든 가방은 출시되기도 전에 선금을 내고 예약하는 고객이 있을 만큼 관심을 끌었다. 200개 한정 수량이 한 달 만에 소진됐고 추가 주문에 들어갔다.

셀레브리티와 패션의 협업

니나리치 여성액세서리팀의 서수정 디자인 실장은 “매출 성과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니나리치는 2008년 제일모직이 국내 라이선스 사업권을 획득하기 전까지 여러 업체가 각 품목에 대한 사업권을 나눠 가졌다. 셔츠·양말·우산 등이 중구난방으로 생산되면서 파리에서 건너온 브랜드는 이름값을 못하고 있었다. 서 실장은 “대중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각인된 저렴한 이미지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는데, 서인영이란 이름을 통해 명품 이미지를 되찾고 젊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객 반응도 디자인을 놓고 호불호가 나뉘면서도 “서인영 한정이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셀레브리티의 스타성을 활용한 콜라보레이션은 패션업계에서 주요한 마케팅 요소다. 출발점은 연예인에게 협찬을 하거나, 그들을 내세워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브랜드의 얼굴 역할을 하는 소극적 관계는 차츰 브랜드와 연예인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으로 바뀌었다.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제작에 참여시키고 ‘누구 가방’ ‘누구 화장품’ 하는 식으로 이름 붙인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10꼬르소꼬모와 빅뱅의 협업으로 만든 스마트폰 케이스. 빅뱅이 디자인한 해골 문양을 이용했다.
빈폴 액세서리가 2008년 김민희 백을 출시한 것이나 최근 10꼬르소꼬모가 빅뱅이 디자인한 해골 문양을 활용한 티셔츠와 스마트폰 케이스 등을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협업은 일회성이지만 효과는 상당히 크다. 스타의 이름 덕에 브랜드 홍보 효과를 얻는 건 물론이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거나 고객층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말 디자이너 브랜드 스티브J & 요니P는 방송인 노홍철씨와 합작한 ‘캐릭터스’라는 브랜드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CJ오쇼핑에서 진행된 콜라보레이션은 1000세트 넘는 의류가 완판되는 성공을 거뒀다. 스티브J & 요니P의 디자이너인 배승연씨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기획한 행사였다”며 “20대 젊은 소비자들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비싼 옷을 사입기는 부담스러운데, 이런 협업이 더 많은 대중에게 내 옷을 선보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기성복에 비해 소수의 고객을 상대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스타가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있고, 서인영씨나 노홍철씨처럼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타 이름이 붙은 제품에 고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분명한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는 소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스타가 예쁘다고 하면 대중심리에 따라 쫓아가고, 그러다 유행이 돼 버린다”며 “앞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건 디자이너가 아니라 연예인 등 셀레브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패션연구소의 김정희 팀장도 “연예인의 비주얼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데, 이들을 단순히 모델로 기용하는 것보다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스토리를 엮어 스타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연결 짓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연예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명성을 쌓는 데 패션 영역에서의 이력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훨씬 일찍부터 활발하게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영역도 확장돼 가수·배우만이 아니라 수퍼모델이나 디자이너, 스포츠 스타 등 다방면의 셀레브리티들이 브랜드와 손을 잡았다. 2007년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와 톱숍 브랜드가 협업한 제품라인은 일주일 만에 약 350만 파운드(약 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케이트 모스는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그로 인해 톱숍이 얻은 홍보 효과가 영국에서만 2000만 파운드(약 356억원)가 넘는 걸로 추정됐다. 이외에도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와 H&M, 세라 제시카 파커와 지미추, 카니예 웨스트와 루이뷔통,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프레드 페리 등 스타와 브랜드의 만남은 수도 없이 많다.

의류보다 스타덤이 더 극적인 힘을 발휘하는 곳이 향수업계다. 향수는 명품 패션브랜드가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제품이지만, 자체 조향사를 두고 있는 브랜드는 샤넬·에르메스 정도다. 대부분은 스위스의 지보당, 뉴욕의 IFF 등 향료 회사에서 만든 향을 사서 브랜드 이름을 붙여 마케팅만 한다. 이런 식으로 출시된 명품 브랜드가 향수 시장을 장악했는데, 여기에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이른바 ‘스타 향수’다. 시작은 1991년 엘리자베스 아덴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손잡은 향수 ‘화이트 다이아몬드’였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스타 향수’가 등장했다. 코티는 2002년 제니퍼 로페즈의 ‘글로(Glow)’를 출시해 1억 달러 이상 판매액을 올렸다. 이후 세라 제시카 파커, 셀린 디옹, 브리트니 스피어스,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니퍼 애니스턴 등 팝스타와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딴 향수들이 잇따라 출시됐다. 이들은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중산층 시장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사라진다. 브랜드와 셀레브리티가 얻는 이득도 막대하다. 스타는 단지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만으로 매출의 5~10%를 얻고, 브랜드는 스타의 이름에 기대 보다 안전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양쪽이 윈윈하는 스타 향수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해 2004년 전체 향수 시장의 1% 정도를 차지하던 것이 지금은 10배 이상으로 비중이 커졌다.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간호섭 교수는 “결국은 유명인의 시대가 됐다는 의미”라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택받는 제품이 되려면 흥행 요소를 갖춰야 하는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그렇듯 이때 셀레브리티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 모델만 등장하던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에 할리우드 스타나 팝스타가 등장하더니, 이젠 힐러리 클린턴까지 등장한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유명세가 곧 돈이고, 이 논리가 가장 잘 먹히는 곳이 패션산업인 것이다.

물론 유명인이거나 연예인이라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김정희 팀장은 “대중이 셀레브리티에게 열광하지만 그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패션 아이콘으로서 쫓아가고 싶은 대상이라야 패션 브랜드와 손잡았을 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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