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연주 무시무시한 氣 내뿜어 청중 전율

중앙선데이 2011.04.24 01:41 215호 31면 지면보기
“이상한 운동화 없나요?”
시장통 신발가게에서 까까머리 중학생이 던진 주문이다. 가게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까까머리는 자기가 무슨 어리석은 말을 했는지 그때야 깨달은 듯 얼굴을 붉히며 냅다 뛰어 달아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근처를 지나다니지 못했다.

詩人의 음악 읽기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


내 어릴 적 추억담이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왜 그랬는지 자기분석이 가능할 나이쯤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완벽하게 평범으로만 주조된 틀 안에서 튀는 작은 용수철의 반동이었던 것을. 성적이든 외모든 가정환경이든 무엇 하나 두드러지거나 눈에 띄는 점이 없던 소년은 특이한 운동화라도 신어보고 싶었나 보다. 귀여운 것.

방송 책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관여하면서 웬만한 시인·소설가는 다 만나본 셈인데 기억에 남는 정말로 이상한 작가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배수아. 그녀의 ‘북쪽거실’ ‘올빼미의 없음’ ‘훌’ 같은 작품을 즐겨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진짜 존경하리라. 내가 진행하던 “책하고 놀자”라는 프로에 그녀가 어렵게 섭외되었는데 25분의 생방송 동안 들을 수 있던 말이 이런 몇 마디였다. “네. 아니요. 몰라요. 말하기 싫어요. 말할 수 없어요.” 나 혼자 미친 듯이 방언을 해야 했다. 아, 그녀는 멋졌다. 이상하니까.

음반 내기 싫어한 자유로운 영혼
이상한 인간형은 예술사에 흔전만전하다. 위대하다 칭송되는 예술가 상당수가 이상, 일탈 또는 불우의 행적을 남기는데 가만있자, ‘이상’이라는 판단은 바라보는 쪽을 정상이라 간주하고 내리는 것 아닌가. ‘이상’ 쪽에서 보자면 단지 다수일 뿐인 정상 쪽이 이상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볼 일이 며칠 전에 있었다.

소콜로프의 러시아 음악가 작품집.
지난 주말 빈센트가 작업실로 놀러 왔다. 3년 만이다. 침울하고 무거운 인상을 지닌 그는 25세의 독일인으로 올해 뮌헨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다. 함께 온 그의 연인이 내 친구다. 내 여자친구의 연인이라니 나이를 헤아려보라. 49세 한국인 여성학자의 애인이 대학생 빈센트다. 가족 간에도 인사를 나눈 둘 사이는 정말 진지하고 오래됐다. 그 나이차를 이상해하면 나는 ‘이상한 운동화’를 못 알아듣는 신발가게 주인이 돼버린다. 이상하다기보다 좀 놀라운 게 따로 있다.
음악 체험은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 연주자에게 두세 배 속도로 연주하라고 주문하거나 음반을 몇 배속으로 돌려 감상할 수는 없다. 많이 살았어야 많이 듣고 많이 안다. 그런데 빈센트는 괴물이다. 틈틈이 작곡도 하는 그는 상상초월의 음악적 식견과 감상 체험을 보인다. 질린다. 고작 스물다섯 살인데! 이번에 빈센트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소콜로프(사진) 이야기를 많이 했다. 뮌헨의 공연장에서 소콜로프가 펼쳐 보인 비경을 음악언어로 설명하고자 빈센트는 애를 썼다. 독일 토박이의 영어와 내 특출한 자의적 해석력이 결합해 좌중의 세 사람이 자꾸만 감탄하고 연방 끄덕끄덕했다. 이 지상에 별세계에서 날아온 예술가가 있다고 믿고 싶다.

음악에도 선수들이 사랑하는 존재가 따로 있다. 폴 매카트니가 아니고(!) 존 레넌이다. 카라얀이 아니고(!) 첼리비다케다. 딥 퍼플이 아니고 레드 제플린이며 그린데이가 아니고 오프스프링이다. 솔직히 장영주가 아니고 미도리이고 미안하지만 금난새가 아니고 임헌정이다. 그렇게 소콜로프는 자리매김해 있다.

16세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1966년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16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를 뒤이을 물건으로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사라졌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채. 오십 가까워서야 유럽 무대에 다시 선을 보였다. 뜨거우면서 차갑다는 모순어법이 딱 들어맞는 연주였다. 시골스러운 아줌마 단발머리에 쥐며느리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시무시한 기를 발산하며 탕탕 피아노를 때리는 모습에 청중은 전율했고, 은둔자 백건우의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 선수들 세계에서 떠받들어지듯 소콜로프는 늙은 혜성의 광채를 펼쳐 보였다. 그런데 성격이 이상했다. 음반 내기를 싫어했다. 스튜디오에서 올터너티브 테이크를 반복해야 하는 기계적 연주를 혐오한 것이다. 결국 마이너 레코드사에서 만들어낸 몇 장 안 되는 라이브 음반이 보물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럴수록 더 열광하는 게 사람 심리다. 너무 절제하고 또 너무 과잉된 양극단을 오가는 정신없는 연주도, 공연 현장에 있는 데도 그곳에 있지 않은 사람처럼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역시 소콜로프여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빈센트 커플이 다녀간 후 나이브와 오퍼스 111에서 발행한 10장 남짓한 소콜로프의 음반을 하나하나 들어보는 중이다. 음악 속에 자꾸만 빈센트의 표정이 겹친다. 특히 스크리야빈의 소나타 3번, 9번, 프로코피예프의 8번 연주가 가슴을 팡팡 친다. 그 연인들은 무사할까. 왜 나는 바보같이 자꾸만 나이를 따져볼까. 이상한 소콜로프의 피아노를 듣다 보니 이 세상에 어떤 사랑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 이상한 신발가게는 없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