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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셰일

중앙선데이 2011.04.24 01:35 215호 33면 지면보기
1905년 러일전쟁에 이겨 만주의 지배권을 확보한 일본은 대륙의 자원 개발에 열을 올린다. 그중에서도 선양(瀋陽)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푸순(撫順) 탄광이 유명하다. 이곳에서 1909년 ‘타는 돌’이 발견된다. 석유 성분을 머금은 암석인 오일 셰일(oil shal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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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확보에 혈안이던 해군과 탄광 소유주인 남만주철도(만테쓰)는 오랜 연구 끝에 효율적인 정제기술을 개발했다. 1930년엔 정제공장을 세워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하루 1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

품질은 의외로 좋았다. 특히 디젤유는 일본 해군의 잠수함 연료로 쓰였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에 참가한 일본 잠수함들이 그 기름을 사용했다. 종전 후 푸순을 접수한 중국군은 일본 기술자들에게 정제법을 배워 계속 석유를 생산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땐 압록강을 넘어 침공해 온 중공군에 푸순제 연료가 보급됐다. 이 시설은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원래 오일 셰일의 정제는 1838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오일 셰일에서 연료를 대량 추출하기 시작한 것은 푸순의 정제시설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석유는 액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일 셰일 이외에 오일 샌드도 있다. 기름 성분이 들러붙어 있는 모래다. 증기로 가열하면 기름을 뽑아낼 수 있다. 이런 걸 ‘비재래형 석유’라 하는데, 그 매장량이 많다고만 할 뿐 얼마인지 확실치 않다. 21세기 들어서도 석유고갈론이 큰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석유고갈론의 대표주자는 영국의 지질학자 콜린 캠벨이다. 그는 98년 ‘석유 생산은 2004년 피크에 이른 뒤 감소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측을 내놨다. 이 주장은 곧 비판에 직면한다. 석유 가채매장량이 자꾸 늘었기 때문이다.

2000년 말 미국지질조사소(USGS)는 이미 써 버린 석유가 1조 배럴, 앞으로 쓸 수 있는 양이 2조 배럴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석유량은 67년분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이 또한 비재래형 석유를 뺀 수치다. 오일 셰일의 매장량에 대해선 설이 엇갈리는데, 학자들 사이의 중간값은 1조9700억 배럴이다. 이것만 해도 60년분을 넘는다. 이보다 더 많다는 오일 샌드까지 합치면 석유의 양은 180년분을 훌쩍 넘는다.

가채매장량이 고무줄처럼 늘어난 것은 기술 발전 덕분도 있지만 고유가의 영향이 더 크다. 기름값이 비싸지자 저유가 시절엔 채산이 안 맞던 유전도 가동하게 됐다. 또 값비싼 비재래형 석유를 개발할 유인도 생겼다. 고유가가 석유 고갈에 대한 공포를 되레 완화시켜 준 것이다.

따라서 석유 고갈에 대해 너무 비관하거나 낙관할 필요는 없다. 다만 비재래형 석유의 등장은 ‘저유가 시대의 종언’을 확인시켜 준다. 꽤 비싼 석유를 오래 쓸 수 있는, 반영구적 고유가 시대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름값 몇십원 억지로 끌어내려 봤자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느라 쏟을 힘을 좀 더 효율적인 데 쓰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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