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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른다, 어쩔래’ 넘치는 과학적 사고 결핍 사회

중앙선데이 2011.04.24 01:33 215호 34면 지면보기
‘빛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이 불쑥 옆에 생겨난다면? SF영화도 아니고…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강입자충돌기(LHC)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에 그런 공포가 창궐했다. LHC는 빛의 99.9% 속도로 가속된 고에너지 양성자를 정면충돌시켜 우주 탄생을 재연하고 그럼으로써 우주의 근본 원리를 찾는 현대물리학 실험의 도구다.

안성규 칼럼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겐 과학실험이 아니라 블랙홀을 부르는 만행이었다. 이들은 충돌 결과 블랙홀이 생기고 주변을 닥치는 대로 삼켜 종말이 온다는 사이비 과학을 믿었다. 2008년 3월 전직 미 공무원 월터 와그너와 스페인 사람 루이스 산초는 하와이 호놀룰루 연방지방법원에 LHC 가동 중단 소송을 냈다. ‘블랙홀 파국’ 동영상도 전 세계에 퍼졌다. 인도의 사원에는 수천 명이 구원의 기도를 올렸고 차야라는 이름의 16세 소녀는 너무 걱정돼 자살해 버렸다.

CERN이 두 차례나 “절대 안전하다”는 보고서를 냈고, CERN의 양자물리학자들이 “블랙홀이 생겨도 10의 마이너스 27초 만에 사라진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쨌든 2010년 3월 30일 LHC에선 인류 역사상 최대 에너지인 7TeV(테라전자볼트)짜리 양성자들이 충돌했다. 그 뒤 아직 누군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는 뉴스는 없다.

과학자들이 차분했던 배경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있다. 그가 1974년 ‘블랙홀의 폭발’이란 논문에서 ‘블랙홀이 빨아들이지만 않고 에너지를 내뿜어 결국 줄어든다. 블랙홀이 작을수록 더 빨리 없어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이 호킹이나 CERN의 과학자들을 신뢰했다면 소동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LHC를 만든다면? 미국산 쇠고기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40억 분의 1쯤이라는 데도 벌어진 난리를 보면 호킹도 손사래를 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궁금하다. 블랙홀 소동 시기와 겹쳐 LHC를 소재로 한 댄 브라운의 밀리언셀러 소설 『천사와 악마』가 나왔다. LHC에서 반물질 4분의 1g이 도난당하고 지구 파괴가 걱정된다. 블랙홀 패닉에 열기를 더했을 소재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사실 이 ‘4분의 1g’은 순 엉터리다. 건국대 이강영 교수는 저서 『LHC』에서 “반물질 4분의 1g 제조엔 2경5000만 달러가 든다. 온 세상 돈을 다 긁어도 모자란다. 또 현재 기술로 그만큼 생산하려면 3억 년쯤 걸린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엉터리란 것조차 몰랐지만 ‘소설이니까’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엉터리라도 현실에선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폭탄이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사실 인류사에서 과학보다 비과학에 집착하는 현상은 꽤 있다. 예를 들어 사랑과 낭만을 연상시키는 ‘레스토랑(restaurant)’이란 단어.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시작이 꽤나 불쾌하다. 17~19세기 ‘관장은 젊음과 정력을 회복시키는 시술’이라며 회복(restoring)의 뜻을 담아 레스토랑이라고 했다(문화라는 이름의 야만).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과학적 사고 부족증’이 심각해 보이는 우리의 지적 풍토가 안타까워 그렇다. 미국의 저명 과학 저널리스트 니모시 페리스는 “과학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왜 옳고, 무엇이 그르며, 어디까지가 옳고,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를 탐색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을 흔드는 사태를 보자.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사태. 사고 후폭풍이 신경 쓰이긴 해도 조금만 과학적이었다면 김황식 총리가 “비 좀 맞아도 된다”고 한 데 대해 “너나 맞으라”하거나 교장이 나서 휴교를 하고, 사람들이 마스크와 비옷을 동내지 않았을 것이다. 좌파의 천안함 강짜도, 영남권 신공항 대소동도 없었을 것이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남의 위원회에 와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고 여기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부 좀 하라”고 소리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원전사태로 주목받은 일본의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메이와쿠 문화도 과학적 사고다.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면 남도 나에게 폐를 끼치게 되고 뒤죽박죽되니 미리 막자는 것, 그게 과학적 지혜 아닌가.

찬찬히 따져 보면 뻔한 일 앞에서 ‘사춘기 10대’처럼 행동하면서도 태연한 어른이 우리 사회엔 너무 많다. 10대들은 ‘그래 난 모른다. 어쩔래’라고 할 수 있지만 어른까지 앞서 그럴 것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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