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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남용 피해 막아줄 ‘코난’을 기다리며

중앙선데이 2011.04.24 01:30 215호 35면 지면보기
봄이 언제 왔나 했더니 벌써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차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벚꽃 잎만 아니라면 봄이라고 하기엔 날씨가 춥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을 잃어버린 듯한 봄비가 추적거린다. 몇 방울 맞아도 괜찮을 듯한 비를 피하려고 모두들 악착같이 우산을 쓰고 다닌다.

동일본 대지진 뒤 방사능 공포에 시달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의 포효 앞에서 안전하다던 원전은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맥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핵 연료봉이 손상돼 멜트다운 직전 단계란다.

그물코처럼 연결된 지구는 한 코가 빠지면 그 빠진 곳을 따라 그물이 무너져 내린다. 방사능이 유출되면 대기가 오염되고, 비를 타고 내린 오염물은 대지와 바다를 더럽힌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따라 생물들이 차례차례 오염돼 방사능 축적현상이 생긴다. 오염은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대기와 바닷물을 따라 널리 퍼져나가고, 국제 교역을 통해 인위적으로도 확산된다.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능 피해를 본 유럽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와 치즈·밀·초콜릿·맥주 등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가 소비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전 지구적인 대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비슷한 시기에 고리원전 1호기가 고장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원자력발전과 에너지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에 관해 국민적 합의와 실천과제를 끌어내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당장은 없애기 힘든 원자력발전의 위험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것인가.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언론매체는 물론 사적인 만남에서도 다양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을 위한 대책들과 함께 심지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인터넷 공간에 올라온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바다에서 일어나는 유류 오염사고에 관한 협약이나 국제기금제도와 달리 방사능 피해에 관한 국제 협약이나 기금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피해를 보더라도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할 국제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이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사능 유출로 인한 손해 발생을 입증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생존의 위협 앞에서 사후약방문 격인 손해배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전 사고 피해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사례는 아니지만 미국에선 방사능 피해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1957년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행해진 핵폭탄 실험의 피해를 주장하며 실험지역에서 220㎞ 떨어진 세인트조지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이들은 84년에야 유타주 연방지법에서 핵실험의 피해를 인정받았으나 항소심(87년)과 상고심(88년)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방사능 피해 앞에서 손해배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뜬금없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만약 원전 사고 위험이 현실화되면 주변 국가들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강화하고 국가 간 원자력 관련 정보를 공유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근대를 연 르네상스처럼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을 패러다임 전환을 초래할 수 있다.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을 맹신한 인류는 ‘욕망’이라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거세게 몰아왔다. 이젠 지구 생명체인 가이아(Gaia)의 자기조절적 메커니즘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인류의 자원을 활용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봄답지 않은 봄을 맞아 방사능의 공포에 해답 없이 시달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온전한 삶이 아니다. 욕망의 충족과 편리함 때문에 미래 인류의 생존까지 걸어야 한다면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자연으로서의 인류는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일본 NHK가 만든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이 된 그 ‘미래’의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이 봄에, 과학의 남용으로 파멸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코난의 출현을 바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진정 봄다운 봄을 느끼며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심정일 것이다. 일요일 오후 ‘미래소년 코난’을 다시 보며 그 코난이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걸 느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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