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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의 실체

중앙선데이 2011.04.24 01:28 215호 35면 지면보기
핵 동결 대신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 2기를 마련해 준다는 제네바 합의가 나온 게 1994년이었다. 2003년 완공 목표였던 경수로는 건설비만 50억 달러(약 5조4000억원)로 추산됐다. 한·미·일이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완공된 경수로는 어떻게 관리될지가 큰 관심사였다. 당시 정부 당국자들에게 이를 꼬치꼬치 물으면 “북한이 정말 2003년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94년 여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시기였다. 그래선지 많은 학자는 “이르면 3주나 3개월, 늦어도 3년 내에 북한이 망한다”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른바 ‘3·3·3 붕괴론’이다. 북한이 곧 망한다는 게 김영삼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이었다. 무너질 정권과 협상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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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북한 붕괴론에 다시 힘이 실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계기로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당국자들이 그런 생각을 확산시킨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말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됐다. 김정일 사후 2~3년 내 정치적으로도 붕괴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해 통일부 업무보고에선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북한 변화 유도와 통일 준비를 핵심과제로 상정했다. 지난달 키 리졸브 군사훈련 땐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훈련이 포함됐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엔 반론이 많다. 독재체제가 바뀌려면 만성적 경제위기와 정치적 불만 외에 파워 그룹(권력 집단)의 분열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엔 그런 현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의 제임스 브라운리 교수는 2006년 ‘월드 폴리틱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45개국 독재자 중 9명이 아들에게 최고권력을 물려줬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권력승계는 한결같이 파워 그룹의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리비아 최고통치자 카다피가 민주화 시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에 맞서는 것도 파워 그룹의 분열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붕괴 조짐이 뚜렷이 감지되는 것도 아니다.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은 “통일부가 북한의 체제 불안과 경제악화 수치를 지수로 만들어 국회에 보고하는데 상황 변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남북관계를 끊고 대북 지원을 중단한 것은 북한 체제 붕괴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북한은 그만큼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고 강조한다. 이를 반영하듯 북·중 교역 규모는 해마다 사상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붕괴론의 실체와 근거는 무엇인가. MB 정부의 대북 압박은 과연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미국이 대북 협상과 6자회담 재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 와중에 94년 방북을 통해 북핵 협상의 물꼬를 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6일 방북한다. 27일 재·보선이 끝나면 외교안보팀의 교체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새 팀은 대북 봉쇄에 정밀 폭격까지 거론된 94년 한반도의 긴장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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