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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 한집 건너 한집꼴 … 작지만 고급스럽게 진화

중앙선데이 2011.04.24 00:52 215호 10면 지면보기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주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고, 국민이 원하는 주택유형도 아파트가 압도적이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빈익빈 부익부’의 주범으로 아파트를 지목하기도 한다. 재테크 수단이라는 혐의다. 이웃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시의 잿빛 살풍경(殺風景)을 낳는 주범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최근 아파트 전성시대의 몰락을 예고하거나 기대하는 담론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아파트를 대신할 대안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어 보인다. 향후 10년 안에는 더더욱 그렇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5> 아파트

아파트 불패론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인구학적 요인이다. 한국 사회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련의 ‘인구 쇼크’, 곧 인구감소·고령화·저출산은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1인 가구의 급증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는 404만 가구에 육박한다. 전체 가구의 23.3%나 된다. 2005년 20.0%, 1985년 6.9%였던 데 비하면 매우 가파른 증가세다. 2030년이면 1∼2인 가구가 절반에 육박할 전망이다. 독일·프랑스·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1인 가구가 30% 가까이 된다.

‘사는 곳 아닌 머무는 곳’ 임대가 대세
1인 가구의 증대는 주로 만혼(晩婚)과 혼인율 하락, 이혼율 상승, 독거노인 증가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구조나 제도의 힘이 약화되는 대신, 모든 게 개인의 결정이자 책임으로 바뀌는 이른바 ‘개인화 시대’ 역시 1인 가구를 확산시키는 문명사적 배경이다. 나 홀로 가구는 성·세대·계급·학력 등을 초월하는 보편적 현상이다. 다인(多人)·혈연(血緣) 가구에 비해 단독(單獨)·무연(無緣) 가구는 주택 구매와 소유 열망 둘 다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1인 가구는 자가(自家) 아닌 차가(借家)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2년 전부터 정부가 이른바 ‘도시형 생활주택’과 ‘준(準)주택’ 공급에 부심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인 가구 시대에 대처하는 미래의 주택정책은 뭘까.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대량공급 위주로 펼쳐질 것이다. 혼자 살면서 단독주택에 살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고시원과 같은 준주택, 다세대주택이나 원룸형 혹은 기숙사형 도시형 생활주택이 정답은 아니다. 미래사회의 신종 트렌드인 ‘싱글족 문화’에 부합하려면 소형ㆍ고급ㆍ임대 아파트일 것이다.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의 진전 역시 아파트 주거문화를 촉진할 전망이다. 미래사회에서 부가가치 생산의 공간적 원천은 농촌도 아니고 교외도 아닌 도심이다. 이른바 창조도시 혹은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도시 르네상스 사업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이유다. 직주(職住·직장과 주거) 분리는 산업사회의 유산일 뿐, 미래에는 직주 일치 내지 직주 근접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다. 일과 가정이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심은 창의와 문화와 감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효율적인 도심 공간 소비방식은 당연히 고밀화와 고층화다. 그러므로 아파트는 지식정보화가 진전될수록 더 인기를 끌 주거형태다.

세계화 또한 가세할 것이다. 도심 속 고급아파트는 세계화의 주역 ‘수퍼리치(Super Rich)’에게 안성맞춤이다. ‘글로벌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입장에선 보안이나 유동성, 환금성 측면에서 도심 아파트가 교외 전원주택보다 낫기 때문이다. 이미 뉴욕·런던·도쿄 등 이른바 세계도시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이주노동자 역시 붙박이 주거보다는 아파트가 편할 것이다. 이처럼 신유목민이 활약하는 세계화 시대의 주택은 전반적으로 ‘사는 곳’에서 ‘머무르는 공간’으로 바뀔 것이며, 소위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는 그 시작일 게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각별하고도 독특한 사회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와 달리 사회변동에는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 작동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란 중산층 진입의 징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단지형 혹은 빗장(gated) 아파트, 브랜드 아파트는 사회적 신분을 구별짓고 있다.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흥미롭게도 아파트는 최상류층이 선호하는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의 누보 리치(Nouveau Rich)들은 최고급·첨단 아파트를 통해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한편 사유화된 초고층 전망을 통해 세상을 시각적으로 지배한다. 게다가 한국에는 서구와 달리 중상류층의 집단적 교외화를 부추길 만한 인종 문제도 거의 없다.

일반 서민들 또한 아파트를 주거생활의 근대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파트가 제공하는 기능적 편리성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아파트가 나만의 혹은 우리 가족만의 프라이버시 공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모든 계층의 선호 속에 주거패턴의 ‘수직적’ 분화를 더 심화시킬 전망이다. 서구사회가 대체로 계급간 수평적 공간분화를 보여준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도시나 동네 안에서 빈곤의 등고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경향을 드러낼 것이다.

친환경 욕구, 자연을 아파트로 끌어들여
아파트의 자체 진화도 눈여겨볼 만할 것이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전형적으로 공급자 주도 시장이다. 수요자가 스스로 집을 짓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 수요자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추려는 관련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1인 가구의 급증에 대응해 이웃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이 각종 커뮤니티 시설의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다. 친환경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교외나 전원이나 농촌으로 떠나는 대신, 아파트 속으로 자연을 끌어올 것이다. 녹지를 확대하든, 실내공기 청정화를 하든 방법은 무수하게 많아질 것이다. 아파트의 토착화도 마찬가지인데, ‘한옥 아파트’라는 개념은 사실 아파트에 대한 한옥의 투항이라고 볼 측면도 있다.

요컨대 현재 그런 것처럼 향후 10년 뒤에도 보다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게 될 공간은 위치나 크기, 높이, 가격, 소유 혹은 임대 여부에 상관없이 아파트 형태가 압도적일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근대건축의 대표적 아포리즘을 남겼다. 무릇 건축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기술공학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성냥갑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는 우리 사회의 주어진 조건과 기능성 수요를 나름대로 반영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 합리성과 기능주의적 편익이 주거문화와 주택정책을 세울 때 최선의 기준은 아니다.

그래서 10년 뒤가 아니라 30년 혹은 100년 앞을 내다보면 아파트 공화국의 무한연장을 체념할 수만은 없다. 아파트 위주의 주택건설이 훗날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한국적 주택문화 유산의 멸실로 귀결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파트에 의한 주거공간의 수직적 양극화가 궁극적으로 ‘분단도시(divided city)’로 귀착될 위험성 때문이다. 말하자면 반촌(班村)과 민촌(民村)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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