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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불같은 ‘열혈남아’ 한번 믿으면 간섭 안 해/ 속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 팀 연패할 때도 선수 다독여

중앙선데이 2011.04.24 00:26 215호 20면 지면보기
허재
허재(46·KCC)와 강동희(45·동부). 의형제를 자처하는 두 감독이 2010~2011 프로농구 우승컵을 놓고 제대로 붙었다.

프로농구 챔프전서 맞붙은 허재-강동희의 ‘냉정과 열정’ 리더십

허재와 강동희는 한국 농구의 명콤비 출신이다. 1986년 중앙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실업팀 기아자동차에서 함께 뛰면서 98년 허재가 팀을 떠날 때까지 12년간 소속팀을 최강으로 이끌었다.
형제처럼 가까운 둘은 성격이 정반대다. ‘냉정과 열정 사이’다. 강 감독이 여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라면 허 감독은 불같은 성격의 ‘열혈남아’다.

선수 시절 강동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다가 눈 깜짝할 새 골밑 패스를 찔러주던 명가드였다. 반면 허재는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농구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한국 농구에서 볼 수 없었던 현란한 기술에다 상대 선수들이 기가 질릴 정도의 근성을 자랑했다.
감독으로서도 둘의 캐릭터는 확실히 다르다. 2009년 동부 지휘봉을 잡은 강 감독은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다. 한순철 동부 사무국장은 “강 감독이 선수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팀이 연패할 때도 선수들을 다독인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선수단 분위기를 자유롭게 끌어간다. 새내기 안재욱(24)도 감독 앞에서 거리낌 없이 의견을 말한다. 그렇다고 강 감독이 ‘물렁한’ 지도자는 아니다. 선수들의 잘못된 점을 냉철하게 짚어서 공개적으로 질책한다. 그는 지난 시즌 공식 인터뷰에서 “윤호영과 이광재는 프로선수가 되려면 기량을 더 키워야 한다. 김주성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요즘 프로선수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국장은 “강 감독이 웬만해선 칭찬을 하지 않아서 선수들이 감독을 어려워한다”고 설명했다.

강동희
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로 야단을 치기보다 전술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펼치고 있다. 그는 불과 두 시즌 만에 동부를 대표하는 ‘질식 수비’를 완성했다. 동부의 전 사령탑이던 전창진 KT 감독은 “강 감독이 내가 쓰던 수비 전술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수비를 만들었더라. 수비할 때 김주성을 앞쪽으로 빼 자유로운 역할을 주는 작전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외강내유’다. 겉으로 드러나게 선수들을 휘어잡으면서도 뒤에서는 챙긴다. 2005년 5월 KCC 감독이 된 그는 작전 수행을 제대로 못하면 무섭게 노려보고 다그친다. 팬들은 이를 ‘허 감독의 레이저 빔’이라고 한다.

그러나 허 감독은 선수를 잡아먹을 듯 다그치다가도 “괜찮아, 괜찮아”라며 엉덩이를 두들겨주곤 한다. 그는 선수들을 ‘사나이 대 사나이’로 대하는 걸 중시한다. 조진호 KCC 홍보팀장은 “허 감독은 비주전들을 정말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믿음이 가는 선수들에게 반드시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하승진·전태풍 등 개성 강한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고 믿음을 보낸다. 그래서 KCC는 이들이 신바람을 낼 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발력을 자랑한다.

두 감독이 결승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챔프전 동안 인연을 끊겠다”고 공언했던 두 사람은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그냥 해본 소리”라면서 1차전 전날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전까지 둘의 맞대결에서 승자는 허 감독이었다. 지난 두 시즌 정규리그 맞대결 전적은 허 감독이 8승4패로 앞선다. 심지어 TV ‘알까기 대국’에서도 허 감독이 이겼다. 챔프전이 열리기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KCC의 우승을 점쳤다.

그러나 둘은 7전4선승제 챔프전에서 2승2패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강 감독이 깜짝 전술로 먼저 공격하면 허 감독이 반격하는 양상이다. 강 감독은 1차전에서 허 감독의 허를 찔렀다. 동부는 주전 센터 로드 벤슨을 빼고 스피드가 좋은 빅터 토마스를 내보냈다. 발이 느린 KCC는 속공에 당했다.

2차전에서는 KCC가 반격했다. 하승진이 김주성과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벤슨과는 신경전을 벌이면서 분위기를 살렸다. 허 감독은 이 경기 전 선수들에게 “1차전에서 정신줄을 놓고 하더라. 너희가 관중인 줄 알았다”고 호통을 쳤다.

3차전에서는 동부가 KCC를 역대 플레이오프 최소 득점인 54점으로 묶으면서 또 달아났다. 우지원 SBS ESPN 해설위원은 “동부가 1차전과 전혀 다른 수비를 들고 나왔다. KCC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설명했다.

강 감독은 3차전 후 차마 전화를 하지 못하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친 선수들은 어떻습니까’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허 감독이 곧바로 전화를 해 “자식, 좀생이처럼 문자질이냐. 괜찮으니 다음 경기에서 제대로 붙자”고 말했다. 4차전에서는 ‘제대로 붙은’ 허 감독이 이겼다.

코트에서는 뜨겁고, 코트 밖에서는 따뜻한 두 사람의 챔프 5차전은 24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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