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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핵심가치 유지하려면 ‘준비된 CEO’ 키워라

중앙선데이 2011.04.24 00:02 215호 27면 지면보기
Q.경영권 승계 프로그램과 일하기 좋은 기업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뭐가 좋습니까? 승계 과정에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어떻게 만드나요? 중소기업도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한가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6>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⑤ 끝

A.우선 최고경영자(CEO) 후계자는 사내에서 발탁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외부 영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야겠지만 사내에서 선발해야 구성원이 CEO가 될 수 있죠. 구성원이 CEO가 되는 것이야말로 구성원 만족의 정점이고, 구성원 중심 경영의 진수라고 봅니다. 구성원이 주인인 회사라면 경영권도 구성원이 물려받아야죠. 그런 회사가 ‘일하기 좋은 기업(GWP)’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자격과 자질을 갖춘 구성원에게 경영권이란 바통을 잘 넘기면 회사의 핵심가치와 조직문화를 유지하기 쉽습니다. 그에 따라 회사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고 좋은 성과도 낼 수 있죠. 반대로 경영권 승계가 잘못되면 회사가 쇠퇴하고 좋은 사람들이 떠나게 됩니다.

지난해 12월 저희 회사가 워크숍을 했는데 주제가 ‘우리 회사가 망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저는 기업 몰락의 가장 큰 변수가 ‘CEO 리스크’라고 봅니다.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이를 제어할 장치의 미비, CEO 자리의 잘못된 승계 같은 것이죠. 저는 외환위기 후 다수의 대기업이 붕괴한 것도 CEO 승계 리스크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창업 당시부터 저는 친족 배제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저의 친족이 회사에 들어오면 좋은 점도 있지만 상당히 문제가 많을 거라고 봤습니다. 파벌이 생기고, 공사 구분이 안 되면서 회사가 사유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LG, GS처럼 그런대로 잘 운영되는 기업들도 있어요. 두 달간의 안식휴가를 보내면서 저는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5년에 걸쳐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검증된 인물로 하여금 차기 CEO를 맡게 하는 것이죠. 저희는 이 프로그램을 가동해 차기 CEO를 오랜 기간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습니다. 1차로 30여 명의 잠재 후보군을 선정했습니다. 그 후 다양한 보직을 맡기는 등 자질 평가를 거쳐 이들을 4명으로 압축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사내 외국인도 포함됐어요. 다음으로 이 4명에 속하지 않은 사내 시니어 멤버 5명과 치열한 토론을 거쳐 다시 2명을 탈락시켰습니다. 마지막 단계로 사외이사 4명과 외부 전문가 2명으로 CEO 선정위원회를 구성했어요. 이분들에게 2명의 최종후보에 대한 평가자료를 전달했습니다. 사내 핵심 멤버 20명과 사외 자문교수 5명 등 25명의 의견을 취합한 것이었죠. 저는 여기까지만 관여했습니다.

최종후보 두 사람은 CEO 선정위원회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CEO가 되면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설명하고 선정위원들의 질의에 응하도록 했죠.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뽑힌 사람이 이순광 당시 부사장입니다. 2009년 초 이 부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됐고 올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CEO 승계 방침을 공개한 지 약 7년 만이었죠. 후계자가 결정되기에 앞서 저는 최종후보자 두 사람에게서 탈락하더라도 회사를 떠나지 않고 CEO가 되면 탈락자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습니다.

CEO가 차기 CEO를 낙점하면 독단에 빠져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선의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럴 수 있어요.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저는 제가 못 보던 것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참 똑똑하구나, 이 사람들의 평가가 상당히 엄정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65세가 되는 2014년 회사 일에서 손을 떼고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려 합니다. 그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한 채 해외 업무, 기업 인수합병(M&A), 신사업 등 전략적 과제를 챙기는 한편 이 사장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이 사장에게는 두 개의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CEO 승계에 성과로 부응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서번트 리더십을 포함해 확실한 리더십을 구성원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죠.

이 관문을 통과하면 한미글로벌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은 완성됩니다. 이제 시스템과 문화로 정착시키는 일만 남았어요. 이 사장이 CEO가 되면 또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죠. 3~5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내에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외부에서 발탁해 사내 풀에 포함시키면 됩니다. 저는 저희처럼 건설사업관리(CM)하는 회사, 글로벌 경영을 하는 회사는 외국인 CEO도 괜찮다고 봅니다.

CEO 승계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웬만하면 비용이 들더라도 전공 교수나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CEO 본인도 공부를 좀 해야 합니다. 외국 사례를 포함해 사례 조사도 하고요. 승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파벌, 줄서기, 암투에도 대비하고 탈락자를 끌어안는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검증 과정에 구성원과 사외이사 등 외부인을 참여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건전한 승계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저는 저희 프로그램을 공개할 용의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물어오면 무료로 코칭해 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가업 수준의 중소기업도 회사를 더 키울 생각이 있다면 오너가 능력 있는 사람을 발굴해 양성해야 합니다. 철학의 문제이지 기업 크기와는 관계없다고 봅니다.

CEO는 한 20년은 해야 된다고 봅니다. 선진국, 특히 유럽에서는 보통 20년씩 합니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이 탁월한 경영 성과를 거둔 건 능력도 빼어났지만 20년간 재임했기 때문입니다. 장기 경영은 업종 불문하고 필요합니다. 오너 경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속성입니다. 10년 이상 CEO를 하면 업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CEO의 나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저는 난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대한 배려랄까 세대 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전문경영인으로 키우는 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얼마인데요. 이런 발상은 군사문화의 유산인지도 몰라요. 선진국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일입니다. CEO는 정신건강을 포함해 본인이 건강하다면 70세, 75세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 70세 된 부사장이 한 분 있습니다. 이분더러 저는 80세까지 일하시라고 합니다.

기업의 10년 생존율이 20% 이하입니다. 20년 생존율은 더 낮죠. 50년 생존은 거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그런데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은 생존의 확률을 높여 줍니다. 지속가능경영은 물론 투명경영, 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장치죠. 경영과 자본의 분리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회사인데 승계를 잘못해 5년 안에 망하는 길과 50~100년 가는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기업가들에게 회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식보다 더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다. 자식이 능력도 있고 검증까지 거쳤다면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죠. 어떻든 CEO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욕을 내려놓아야 돼요. 기업을 망하게 하는 건 기업인의 가장 큰 죄악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말입니다.

※한미파슨스는 지난 18일 창립 15주년을 맞아 한미글로벌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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