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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맨해튼의 ‘3색 신호등’이 글로벌 스탠더드라 하는데 …

중앙일보 2011.04.23 01:50 종합 2면 지면보기



16차로 광화문, 일방통행 맨해튼과 달라
국민 무시 ‘3색 신호등’ Q&A





경찰이 시범 운영 중인 3색 신호등의 실효성과 도입 과정에 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화살표가 들어간 3색 신호등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도로교통에 관한 빈 협약’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경찰이 3색 신호등 체계를 사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미국 뉴욕을 들지만 미국 역시 빈 협약 가입국이 아니다. 경찰 주장의 모순점을 전문가들의 지적을 종합해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 경찰은 빈 협약을 국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A : “국가 간 추가 논의를 거쳐 1978년 발효된 빈 협약은 유럽과 중동, 인도 등지의 52개국이 회원국이다. 미국·영국과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는 협약 당사자가 아니다. 빈 협약을 반드시 따라야 할 국제 기준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Q : 국제적으로 신호등 기준을 통일시키는 게 바람직한가.



 A : “신호등을 어떻게 만들지는 나라마다 편의에 따라 결정하는 측면이 크다. 우리나라 신호체계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낙후됐다거나 기형적이란 근거는 없다. 익숙해진 신호체계에 따른 안전이 우선이다.”



 Q :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 중인 4색 신호등 체계는 빈 협약에 위배되는 것인가.



 A : “빈 협약의 골자는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서고 녹색 불이 들어오면 가며 ▶신호등에 빨강·노랑·초록을 쓰며 ▶필요에 따라 화살표를 쓸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빨강·노랑과 초록 사이에 좌회전 화살표가 있는 현행 4색 신호등도 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 보기 힘들다.”



 Q : 뉴욕 맨해튼 등지에서 찍은 사진 등을 제시하며 화살표 3색 신호등이 세계적 추세라는 경찰 주장이 근거 있나.



 A : “맨해튼의 거리와 광화문, 세종로의 거리는 다르다. 맨해튼은 애비뉴(대로)라고 해도 일방통행이 많고 도로 폭이 광화문 사거리(왕복 16차로)처럼 넓지 않아서 운전자들이 자기 차로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의 신호등을 보는 데 무리가 없다. 미국은 또 각 주마다 신호체계가 다르다.”



 Q : 외국 사례를 적용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나.



 A : “우선 외국엔 일방통행 도로가 많고, 대부분 교차로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강남, 신촌 같은 곳의 야간 교통 흐름도 외국과 크게 다르다. 이런 문제들은 신호등을 교체한다고 개선되는 것들이 아니다.”



 Q : 경찰은 화살표 3색 신호등을 보면 야간이나 초행길에도 좌회전이 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A : “경찰은 Y자형 교차로 등에서 운전자에게 진행 방향의 신호를 분명하게 제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 부차적이고 예외적인 이유로 340여억원의 세금을 들이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22일 “영국과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자동차로 다른 나라에 갈 일이 없어 빈 협약에 가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우리나라도 분단국가라 사실상 자동차로 외국에 가는 일이 없어 가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은 왜 가입하지 않았는지, 경찰은 왜 세계 대부분 국가가 비준하지 않은 협약을 토대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빈 협약이 선진국 교통체계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 홍보하고 있는 경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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