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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KAIST 출신으로서 고한다

중앙일보 2011.04.23 01:3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이중 나선』이라는 책이 있다.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공동으로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왓슨이 그 드라마틱한 발견 과정을 재구성한 책이다. 출판기념회에서 누군가가 “경쟁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오히려 더 강조해야 했어요. 경쟁이라는 것은 과학에 있어 가장 큰 동기입니다.”



 그 격렬했던 KAIST 사태가 이제 학교 측의 혁신비상위원회의 출범으로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처음에는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거론하며 대학 당국을 강하게 비난하던 여론과 언론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보완책을 찾아가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것 같다. 이러다간 망언록에 오른 서 총장의 ‘소방 호스론’(“MIT 재학 시절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공부할 양이 많았다”는 서 총장의 말)이 명언록에 오를 기세다. 우리 사회가 경쟁을 여전히 핵심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실 이 ‘경쟁’이라는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언론과 여론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와 ‘어떻게’일 터인데, 우리의 싸움은 여전히 경쟁이냐 아니냐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잠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나도 KAIST 학부 졸업생이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작 공부에는 흥미를 잃고 온갖 고민은 다 짊어진 것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처럼 승자들을 부러워하면서 스스로를 국가 과학영재 프로그램의 부적응자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대학을 겨우 졸업한 후 새로운 공부의 기회를 얻기 위해 다른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때부터 내 인생은 달라졌다. 나름의 ‘실패’를 경험해 봐서인지 새로운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밥 먹는 시간까지 아까워 책을 끼고 식당에 가곤 했다. 읽을 책이 너무 많아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며 대학원 노조를 만들어 보자고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부심 넘치는 즐거운 비명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의 이유는 ‘소방 호스’가 아니라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자발적인 경쟁이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은 ‘왜’를 묻고 있다. 학생의 나약함을 꾸짖는 어른들도 있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은 경쟁의 달인들이다. 그 혹독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게는 10년 이상을 고도로 훈련받은 전사들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처럼 어쩌면 그들도 입시 문턱을 넘자마자 공부의 이유를 상실하고 만 ‘문턱 증후군’ 환자일지 모른다. 이런 그들에게 ‘세계 몇 위’라는 목표는 약발이 통하는 가치일 리 없다. 더 강한 처방, 즉 더 크고 높은 수준의 가치가 필요하다. 남들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는 글로벌 등수 놀이가 유아적 발상이라는 사실은 우리 어른들만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도 ‘세계 몇 위’는 분명 하수들의 언어다. 공자는 대체 왜 읽는가? “학문을 아는 자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이를 즐기는 자만 못하다.”



 잊혀진 호기심을 되살려 주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활활 타게 만드는 장작, 즉 열정을 전수해 줘야 한다. 열정은 우리가 남들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할 삶의 태도다. 이 호기심과 열정에 감염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리더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이다. 왓슨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크릭은 “경쟁에서의 승리보다는 DNA 구조를 정말 알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카너먼의 이름 옆에는 늘 또 하나의 이름이 따라다닌다. 카너먼과는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동문이며 한때 모교에서 함께 가르치고 연구했던 트버스키가 그다. 그들은 ‘발견법과 편향’ 연구프로그램을 창안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함께 연구했다. 그런데 사후 수여 불가 원칙에 따라 카너먼만 노벨상을 받게 된다. 기자회견장에서 어떤 기자가 “왜 어떤 논문에는 선생님 이름이 먼저 표기되고 다른 논문에는 트버스키 이름이 먼저 표기되어 있죠? 기준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우리 둘은 서로 완전히 동의할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했지요. 그런 후에는 동전을 던져 제1 저자를 정했어요.” 이 한마디로 인해 노벨상의 품격은 한없이 격상됐다. ‘협력을 통한 경쟁’은 경쟁력이 있다!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대학들을 보자. 그들의 목표는 협력과 상생의 기치를 내걸고 함께 봉사하고 경쟁하는 행복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경쟁이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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