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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마지막 회

중앙일보 2011.04.23 01:3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음악 하러 떠난다고요”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혜련의 난데없고 별난 행동들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대중없이 혼자 마신 술로 끝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곯아떨어졌던 내가 아홉 시가 넘어서야 깨어나 보니 집안에 그녀가 없는 것도 그렇고, 집안이 말끔히 치워져 있는 것도 그랬다. 이래저래 그녀가 우리 집에서 밤을 새운 것은 여러 번이었지만 아침에 인사도 없이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 어떤 때는 내 아파트를 제집처럼 편하게 여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집안 청소까지 하며 집주인 흉내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갑자기 까닭 모를 불안감에 내몰리어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혜련이 지녔던 것으로 기억되는 손가방이 보이지 않는 데다 현관에도 그녀의 신발이 없고 도어까지 잠겨 있는 것으로 보아 집 밖으로 나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식당 탁자 위에 나와 있는 생수로 속을 달래며 간밤에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찾아온 까닭을 헤아리느라 은근히 긴장했던 터라 취한 중에도 엉뚱한 소리로 그녀를 자극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얘가 갔구나. 이제는 아주 멀리로 떠나는 것 같구나 - 나는 무언가 큰 실패로 낙담한 기분이 되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기 쪽으로 갔다. 어쨌거나 내 쪽에서라도 작별 인사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어렵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내던지듯 내려놓은 내가 한달음에 달려나가 현관문을 열자 큰 쇼핑 봉투를 든 혜련이 아주 당연한 얼굴로 들어섰다.



 “네가 가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웬일이냐? 그건 뭐고?”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그렇게 물었다.



 “장 좀 보아 왔어요. 어떻게 해장국이라도 끓여 보려고요.”



 혜련이 다시 천연스럽게 받았다. 그 난데없는 주부 흉내가 다시 나를 긴장시켰다. 얘가 뭘 하려고 이러나···. 그때 그녀가 내 등이라도 떼밀듯 말했다.



 “들어가 더 쉬세요. 뭐든 끓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전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일을 잇따라 하자 나는 다시 슬며시 긴장이 되었으나, 그러는 목소리에는 왠지 사람을 안심시키는 푸근한 여운이 있었다. 거기다가 들어가 더 쉬라는 그녀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간밤의 취기가 되살아나며 잠시라도 더 쉬고 싶어졌다. 나는 더 대꾸 않고 자리에 돌아가 누웠다.



 혜련이 나를 깨운 것은 까닭 모를 푸근함에 젖어든 내가 아슴푸레 잠이 들 무렵이었다.



 식탁으로 가보니 그새 끓인 콩나물 해장국과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제법 그럴싸한 한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상머리에 앉으면서 나는 잠시 묘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그러자 입에 떠넣는 음식 맛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내 머리는 엉뚱한 기대로 차올랐다. 나중에는 조금 전까지도 상상조차 못했던 추측까지 단정적으로 중얼거렸다. 아하, 그래서 네가 내게 왔구나. 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서 내게로 온 것이로구나. 이제 내게 와서 쉬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 망상과도 같은 추측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뭇 담담한 얼굴로 상을 거두고 설거지까지 깨끗이 한 뒤에 커피를 끓여 내올 때만 해도 혜련은 결코 내 집을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행동했다. 그러다가 커피 잔을 거두고 일어나면서부터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허드레 옷가지를 벗어 개어놓고, 자신의 나들이옷으로 갈아입은 뒤 화장실에서 가볍게 얼굴 손질을 하고 나오는 걸 보고 참지 못한 내가 물었다.



 “왜, 무얼 하려고?”



 “이제, 가봐야겠어요. 너무 오래 있었어요,”



 그녀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펄쩍 뛰듯 물었다.



 “내게로 온 게 아니었어? 여기 와서 함께···.”



 “아녜요. 인사 드리러 왔어요. 이제 떠나야겠어요.”



 “떠나다니? 또 어디로? 그리고 갑자기 왜?”



 “갑자기가 아니에요. 뉴욕으로 가요.”



 “나는 네가 리투아니아를 다녀왔다기에 이제 다시는 떠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 뉴욕이야?”



 “그쪽에서 함께 음악 해보자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런데 그 말이 내게는 가장 낯설게 들렸다.



 “거기 가서 음악 한다고? 어떻게? 누구와?”



 내 목소리가 너무 높았던지 혜련이 둥그렇게 눈을 떠 놀라움을 표시하며 물었다.



 “왜 뭐 잘못되었어요?”



 “그게 그렇잖아? 여기 와서 잘나가다가 갑자기 왜 밖으로 나가겠다는 거야?”



 “저는 꼭 밖에 나가서 음악 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이상하잖아? 리투아니아로 돌아간다면 또 모를까.”



 “아까부터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하시니까 그러는데, 선생님 혹시 무언가 지레짐작으로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뭘?”



 “제가 어디로 피해 달아난다는 생각. 특히 혈통적인 정체성과 관련된 어떤 콤플렉스에 쫓겨? 그리고 한술 더 떠 그런 네가 이제 갈 곳은 리투아니아뿐일 거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갑자기 내가 무얼 잘못 생각했나 하는 느낌에 흠칫하며 내가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그녀가 어이없을 때 흔히 그러듯 풀썩 웃으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아이고, 우리 오라버님 저리 촌스러워 어쩌나? 글쎄, 그건 아니라니까요. 우선 이 근래 내가 안티 애들에게 좀 시달리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내 혈통적인 정체성이 뿌리째 훼손되지는 않았다고 봐요. 그 때문에 이 땅을 떠날 생각은 더욱 없고요. 거기다가 리투아니아도 그래요. 물론 내 피의 절반은 그쪽에서 흘러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미국과 한국을 아울러 뛰어넘는 내 피의 근원일 수는 없다고요. 선생님 생각처럼 미국, 한국 다 안 되니 거기밖에 돌아갈 수 없는 피의 조국은 더욱 아니고···.”



 “그럼 뭐야? 왜 떠나는 거야?”



 내가 갑자기 가슴 철렁해 따지듯 물었다.



 “말씀 드렸잖아요? 음악 하러 떠난다고요.”



 “음악을 왜 나가서 해야만 돼?”



 “음악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예술 하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죠. 노마드화 말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 유목문화 얘기가 왜 나와?”



 “선생님도 그 소리는 들으셨지요? 이 시대에는 삶의 모든 국면이 유목화한다고. 특히 정착문화가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함께 정착화했던 예술은 이 시대가 되살려낸 유목화의 전위가 되었다고.”



 “그럼 너도 유목민이 되어 떠돌러 떠나는 거야? 쫓겨가면서 하는 변명치고는 거창하네.”



 “그래도 자존심 지키자고 지어낸 구실은 결코 아니에요. 지난 몇 달 나도 저들의 악의에 넌덜머리를 낸 건 맞아요. 이건 내 인격의 문제고 자존심과도 연관된 방어전이라고. 그리고 여기서 지면 나는 쓰러져 짓밟히거나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핑계로 리투아니아를 다녀와서는 달라졌어요. 떠나려고 결심하고 보니 제가 빠져 있었던 수렁은 인격이나 자존심은 물론 존재감이나 혈통적인 정체성과도 무관한 것이었어요. 예술의 문제이고 음악가와 청중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부가 새로운 초지를 찾아 나서듯 예술가가 자신의 관객이나 청중을 찾아 떠나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거기까지 듣자 언뜻언뜻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말이 있었지만 내 기분은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쩌겠니? 아무래도 너는 찢어진 눈에 노란 피부를 가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너희 집으로 울며 뛰어가던 그때의 그 ‘금발의 제니’로만 보이니···.”



 그래놓고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주책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기 나와 함께 있지 않을래? 그 아이들 무시하고 이제 제대로 된 음악 해보며 다시 살아보지 않을래? 여기, 네 나라 네 땅에서.”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가만히 일어나며 말했다.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오래 뵙지 못할 것 같아서 작별을 좀 꾸물댔을 뿐이었어요. 언제 출국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냥 떠날게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담담한지 그녀의 두 손을 감싸 잡고 있던 내 손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얼른 그녀의 말을 받지 못해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현관 앞에서 무엇 때문인가 눈앞이 흐려져 허둥대는 나를 집안으로 가만히 밀어넣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다시 만나뵙게 되지 못할지라도 오래 그리워할 거예요. 상간의 추억도요.”



 그게 이제 십 년이 지났는가. 그 뒤 나도 그녀가 떠난 까닭을 되도록 그녀가 밝힌 대로 믿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쩌다가 그녀가 화제에 오르거나 무언가 그녀와 관련된 일로 추억에 젖게 되는 날 밤 홀로 마시다가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저무는 리투아니아의 바닷가에서 그 모래 빛깔을 닮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끝)



글=소설가 이문열

일러스트=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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