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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데뷔 25년 맞는 이 여배우의 고백 … 심혜진

중앙일보 2011.04.23 01:30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배우 심혜진을 만났다. 그녀는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CF모델로 데뷔했다. 훤칠한 키(1m69㎝)와 서구적 외모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CF와 영화 속에서도 늘 ‘세련되고 도회적인 커리어 우먼’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맞벌이문화 같은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그런 이미지는 스크린 밖으로도 이어졌다. TV 프로그램 사회자를 단골로 맡았고, 지상파 방송에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2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라디오 DJ도 1년간 했다. 심혜진은 바쁘게 살아왔다. 그녀는 얼마 전 드라마 하나를 끝내고 ‘쉬는’ 중이다. 그것도 시골에서 쉰다. 2007년 한씨 성을 가진 사업가와 결혼해 경기도 가평의 호수변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j와 인터뷰하면서 그녀는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가 갔다. 그런데 “연기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말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릴까?


배우 생활 25년 … “연기 다시 배우고 싶어요”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심혜진은 자신보다 앞서 CF모델이 된 언니를 따라나섰다가 CF모델이 됐다. 그 언니를 지난달 돌연사로 잃었다. “죽을 만큼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줄은 언니도 가족도 몰랐다. 무슨 암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자 심혜진은 20분 가까이 언니가 죽음에 이른 과정을 들려줬다. 몇 차례 울먹였다. 주제를 바꾸자 심혜진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돌아왔다. 건강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건강하시죠?



 “건강해요. 건강하다고 생각하죠.”



●피트니스센터 못지않은 운동시설이 집에 있다면서요? 운동을 열심히 하나 봅니다.



 “열심히 했었죠. 그런데 집에서 한두 시간 운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집에 있을 땐 집안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살림이라고 딱히 하는 것은 없지만….”(웃음)



●집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남편이 밥 먹을 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도 일이잖아요. 도우미 아줌마가 계시지만 장 보고, 식단 짜고 하는 것은 제가 해야 하고요. 집에서 쉬는 게, 쉬는 것은 아니죠.”



 “살림을 잘할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그녀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잘하진 않아요”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1990 ‘그들도 우리처럼’









1992 ‘결혼 이야기’









1995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6 ‘박봉곤 가출 사건’









2005 ‘안녕, 프란체스카’





●영화, 드라마, MC, DJ 하면서 아주 바쁘게 살아왔죠?



 “항상 바빴던 것 같아요. 가장 한가한 게 결혼하고 나서예요. 그전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살았어요. 시간 내서 휴가 갈 만한 여유가 한 번도 없었어요.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배우는, 세상이 자신을 안 불러줄 때 슬럼프에 빠진다 하죠?



 “슬럼프가 있었죠. 하지만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간다’라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제게 슬럼프는 95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왔죠. 일, 인생, 가족 중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민한 결과 생각이 달라졌나요.



 “개인적으로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은 처음이었어요. 한 3~4년 정도는 방황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많이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랬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어요. 이게 현실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눈물도 안 났었죠. 엄마의 빈자리를 1년 뒤에야 알겠더라고요.”



●“안 부르면 내가 간다”고 했는데, 가서 뭐라고 하나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겠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그게 될 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하겠죠. ‘좋은 시나리오가 나왔다더라’ 들리잖아요? 그럼 저는, 제가 갔어요.”



●누구에게요?



 “감독한테요. 가서 ‘내가 시나리오 구해 봤는데, 아주 좋더라. 내가 할 건데, 괜찮겠느냐’ 물어보죠.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 제 의지를 밝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캐스팅된 작품이 있나요?



 “‘결혼이야기’가 그랬어요.”



 심혜진은 ‘결혼이야기’(1992년)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심혜진의 대표작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은 원하는 게 있어도 그저 기다리죠. 그것이 자기에게 오지 않으면 속상해하고요.



 “저도 그런 적이 있었죠. 그런데 그런 자세는 내가 자존심을 지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솔직한 게 좋아요.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거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거고…. 뜨뜻미지근한 밥 먹느니, 아예 찬밥이 낫죠. 아니면 새 밥을 먹든지.”



●똑 부러지는 성격 같군요.



 “이왕이면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죠.”(웃음)



 이런 성격 덕분이었을까. 심혜진은 ‘그들도 우리처럼’(90년) ‘박봉곤 가출사건’(96년) ‘초록물고기’(97년) ‘국경의 남쪽’(2006년) 등의 영화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은 뭐라 생각하나요.



 “뭐가 있을까요? 누군가 나한테 ‘제일 잘하는 게 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들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고, 남들보다 더 노력할 수 있다’ 그랬죠.”



●배우로서 약점은요?



 “음. 약점도 없는 것 같아요.”(웃음)



●90년대에 인기가 대단했죠?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광고에서 처음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모든 것이 과도기였어요. 예쁘지 않아도 스타일리시한 사람을 찾던 때였죠. 미와 멋에 대한 관점이 바뀌던 때에 제가 등장한 거죠. 그 전까지만 해도 정윤희씨, 장미희씨, 유지인씨처럼 아담하고 눈, 코, 입이 제자리에 있는 전형적인 미인이 인기였잖아요.”



●그래도 코카콜라 광고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20대니까요. 참 풋풋했죠.”(웃음)



●영화를 참 많이 찍었죠. .



 “그때는 배우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별로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선택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경쟁할 상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을 독식할 수밖에 없던 세대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편하고 쉽게 길을 닦아온 거죠.”



 심혜진은 많게는 1년에 세 편씩 영화를 찍었다. 현재까지 찍은 영화가 30편 가까이 된다. 영화제라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빠짐없이 받았다.



●남자배우와도 연기를 많이 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누굽니까?



 “‘안성기씨가 조금만 젊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배우로서보다는 인간으로서 참 좋은 분이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많은 배우인 것 같아요. 본질이 좋은 분이죠.”



 심혜진은 안성기와 함께 ‘박봉곤 가출사건’, ‘그 섬에 가고 싶다’(93년) 등의 영화를 찍었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는 덜떨어진 여성 역할을 맡았죠? 배역 가리지 않는 여배우인가요?



 “뭐, 배역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연기도 못하는 것이 이것저것 가리고 그러면 욕먹을 때였어요.”(웃음)



●솔직함 때문에 손해 본 적 있습니까?



 “수도 없이 많았겠죠? 너무 솔직하니까, 다른 사람 비위를 건드려서…. 사람이 포장도 할 줄 알고, 기분이 조금 나빠도 참을 줄 알면, 특별한 손해 없을 수 있는 일들이….



●화를 잘 못 참나요?



 “화를 잘 내는 편이에요. 하지만 뒤끝은 없어요.”



●어떤 경우에 화를 내나요?



 “상대방이 경우가 없을 때, 너무 이기적일 때 화를 내죠. 자기가 더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지나치게 자기 위주로 포장해서 나에게 설명할 때 화가 나요. 캐스팅이나 광고를 할 때도 그렇고요. 우리 같은 연예인은 선택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선택받으려면 예쁘게 보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싫으면 말지, 왜 잔소리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선택했으면 됐지. 됐어! 관둬” 이러기도 했죠.”



●욕심이 없어서였나요? 아니면 자신감에 가득 차서요?



 “둘 다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솔직함이 득이 되죠?



 “마음은 항상 편해요. 제가 누구에게 거짓말하는 사람 아니라는 것을, 저를 아는 사람은 다 알 것 아니에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마당발인가요?



 “(주저 없이) 아니에요. 저는 모든 사람한테 배려를 하진 않아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랑 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성격도 아니에요. 저랑 통하는 사람이면 배려를 하죠. 자기보다 약하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과는 절대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친구끼린 계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싫어요.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마당발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심혜진은 솔직했다. 그래서 당당했다. 인생을 즐기는 듯해 보였다.



●인생을 몇% 정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70~80% 정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의지가 있잖아요. 또 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가족과 친구도 있고요. 그리고 어느 때든 1년에 2박3일 정도 여행 가고 싶다면 국내외 어디든 갈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있잖아요. 그럼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요?”



●빨리 새 작품을 하고 싶나요, 아니면 이 여유를 더 즐기고 싶나요?



 “지금은 연기 공부를 좀 하고 싶어요. 중견 연기자이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늘 같은 모습·목소리·연기패턴에 대중이 식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저도 제 드라마·영화를 보면, 제 모습이 싫거든요. 변화하기 위해 뭔가를 싹 뒤집어봐야 하지 않나, 연기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 배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j 칵테일 >> “가평에선 술도 잘 깨요”













심혜진은 경기도 가평군에 산다. ‘호숫가의 그림 같은 대저택(사진)’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서울 토박이였다. 도시를 벗어나 사는 것은 2007년 결혼 후 처음이다.



●가평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죠.



 “군청에서 축제를 열거나 운동장을 새로 건립하면 ‘행사에 나와 달라’고 연락이 와요. 별일 없으면 행사에 참여해주는 게 제 일이죠. 그런데 제가 가평에 산다는 것 자체가 ‘가평 홍보’래요.”



●호숫가 저택에 사시니 참 좋겠어요.



 “일단 술이 잘 깨요(웃음). 공기가 좋고, 공해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피부로 느끼고 살 수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좋죠.”



●술을 좋아하세요?



 “원래 한 잔도 못 먹었어요. 배운 지가 얼마 안 돼요. 저희 남편한테 배웠으니까. 시골 살다 보니 친구나 친지들이 가끔 놀러 오잖아요. 그럴 때 어울리며 술 마시면, 없었던 정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어떤 점이 좋습니까.



 “서울 시내 살면 엎어지면 코 닿는 데 다 마트가 있고, 다 배달해주고 하잖아요. 기분 전환하러 백화점도 가고요. 저희에게는 장을 보러 가는 즐거움이란 게 있어요. 읍내까지 15분 정도 차를 타고 가거든요. 그 시간이 유일하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남편이랑 말다툼하고서 그 시간을 이용해 화해하기도 하고요. 시골 산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여유로움을 주죠.”



●불편한 점도 많을 텐데.



 “도시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시골에는 없는 게 많잖아요. 영화 보러 춘천이나 서울 나가는 게 불편함이라 할까요. 또 폭설 내릴 때 당혹스러운 것? 그런 것들 빼곤 불편함은 없는 것 같아요.”



●가평 사는 분들이 심혜진씨를 다 알겠죠?



 “읍내 식당 가서 사인해 드렸는데, 다음 주에 가면 또 ‘사인해 달라’고 해요. 읍내 식당에 제 사인이 보통 두세 개씩 다 걸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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