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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멋쟁이들 매혹시키는 매력, 세계적 디자이너 폴 스미스

중앙일보 2011.04.23 01:30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어떻게 하면 그의 머릿속을 훔쳐 볼 수 있을까. 60대에도 젊은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매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난해 서울 대림미술관 ‘인사이드 폴 스미스’전을 찾은 관람객들의 절반 이상은 미술·패션·디자인 전공자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호기심, 그 이상이었다. 폴 스미스가 수집했다는 수많은 잡동사니부터 그림·사진을 샅샅이 훑으며 폴 스미스의 ‘창의 코드’를 풀어보고 싶어했다. 폴 스미스의 위력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서부터 롤링스톤스의 리드 싱어 믹 재거를 팬으로 둔 사람, 비즈니스맨은 물론 세계의 수많은 젊은 건축가와 아티스트까지 고객으로 둔 크리에이터.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영국 패션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폴 스미스(Paul Smith·64)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회사 폴 스미스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이며, 수석 디자이너이자 사장인 그는 지금도 세계 72개국 400여 개 매장을 관리하기 위해 1년에 7개월을 여행한다. j가 최근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한국 최초의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를 론칭한 폴 스미스를 만났다. 자유·관찰·디테일·유니크함·유머·장인·낙관주의·긍정·겸손·소통 등 그가 즐겨 쓴 단어들이 ‘폴 스미스가 생각하는 법’을 엿보게 했다.


“예순넷 … 아이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자유·개성·유머·겸손의 디자이너, 폴 스미스
“ e - 메일 안 한다, 집에 컴퓨터도 없다. …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

글=이은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기자가 인터뷰를 녹음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폴 스미스가 말했다. “이거, 내 친구가 디자인한 거죠.”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44) 얘기였다.



●조너선 아이브와 친구라고요?



 “그럼요. 애플에서 일하기 전부터. 조너선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됐어요. 똑똑한 친구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술 얘기로 흘렀다. 그의 창의적인 작업과 디지털 기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마트폰을 쓰세요?



 “갖고 있지만 쓰지는 않아요. 대신에 노트와 펜, 그리고 카메라를 항상 갖고 다니죠. 조너선 아이브와 친구인 건 행운이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신제품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처럼 자주 쓰지는 않죠. 전 아직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종이에 연필로 쓰는 것을 좋아하죠. 매일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요.”



●인터넷도 안 쓴다고 들었습니다.



 “e-메일도 안 해요. 집에 컴퓨터도 없고 자동응답기도 없어요.(웃음) 그게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니까요. 덕분에 더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고, 더 창의적이 될 수 있죠. 폴린(부인)도 휴대전화가 없어요. 저는 휴대전화가 있지만,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입니다.”



●그러면 직원들과 어떻게 연락하죠.



 “예전 사람들이 하듯 하는 거죠. 쉬워요. 생활이 잘 정리돼 있으면 분 단위로 얘기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아날로그적인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균형이 중요하다는 거죠. 최신 테크놀로지는 정말 훌륭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꺼둬야 할 때도 필요해요. 하루 종일 컴퓨터 없이 보내는 날도 있어야죠. 현대 기술과 기존 것들의 균형이 필요해요.”









폴 스미스가 디자인한 상품들. 그는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색깔의 줄무늬를 즐겨 쓴다. 1면의 j로고도 그의 줄무늬를 입힌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야 균형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죠.



 “그래요. 젊을 땐 그냥 삶을 살죠.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죠. 더 이상 아이로만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전 요즘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컴퓨터와 TV에 어린 시절을 다 빼앗기고 있죠. 전에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놀 수 있었는데.“



●어린 시절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어린이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우리 생애에서 10~12년에 불과해요. 굉장히 소중한 기간이죠. 아이들의 사고는 환상적이에요. 교육이나 지식에 휘둘리지 않을 때니까 모든 것에 열려 있고 순수합니다. 저는 지금 제 나이에도 삶을 ‘아이 같은(childlike)’ 관점에서 보려고 해요. 디자이너에게는 이게 특히 중요해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니까. 아이처럼 본다는 것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지 않으면 기껏 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겨우 쫓아하는 것밖에 안 되죠. 어제 신문을 뒤늦게 보는 것처럼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국에 처음 연 플래그십 스토어인데요,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나요.



 “벽에 액자를 거는 일까지! 무엇보다 캐릭터가 중요하니까요. 건물은 한국 건축가(시스템랩: 건축가 김찬중·홍택)가 설계했는데 처음부터 아주 긴밀하게 협의를 했죠. 건축가는 아주 현대적이고 미니멀하면서도 힘있는 건물을 만들어 냈어요. 어떻게 폴 스미스의 개성을 담아내느냐가 관건이었죠. 결국 외부는 미니멀하지만 내부는 반대로 꾸몄죠. 전형적인 폴 스미스적인 방법으로 풀어낸 거죠.”



●폴 스미스적인 방법이 뭘까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고 노는 것!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옷처럼요.”



 이렇게 말하며 그는 재킷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보라색 실크에 화려한 자수 패턴이 들어간 안감이 드러났다. 단정한 겉모습 안에 숨겨진 반전, 재치가 가미된 파격이다.



 “클래식한 정장이지만 안은 좀 흥미롭죠?(웃음) 옷을 디자인할 때도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등 반대적인 성격을 조화시키는 데 신경 쓰죠.”



 폴 스미스는 고전적인 폼격과 기발한 재치를 조화시킨 ‘클래식 위드 어 트위스트(Classic with a twist)’를 내세운 컨셉트로 유명하다. 그는 이 개념을 매장 디자인에도 적용했다. 예컨대 인터뷰를 한 지하 1층 남성복 매장은 벽이 나무 패널로 장식되고, 앤티크풍의 넓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이 공간의 나무 패널 벽면에도 동물 모양 문양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이 역시 디테일을 이용한 일종의 ‘작은 깜짝쇼’다.



 그는 “매장이 단순히 잘 꾸며진 매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캐릭터와 일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폴 스미스의 그 독특함이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잘 통할까요?



 “지난 2~3년간 한국 시장에서 성과가 좋아서 자신감을 얻었죠. 2009년 금융위기 이후로 경기가 안 좋았을 때도 폴 스미스는 글로벌 마켓에서 꾸준히 성장했어요. 한 번도 하향곡선을 그려본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계속 상승했죠. 지금은 72개국에서 판매되고 있고요. 일본에도 점포가 200개나 있습니다.”



 일본에서 폴 스미스의 인기는 유명하다. 200개라는 수치는 백화점의 극소형 코너 같은 부스도 포함한 것을 감안해도 폴 스미스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은 유난스러운 수준이다.



●흔히 폴 스미스는 영국적인 브랜드로 통하는데, ‘영국적인 것’이 뭘까요.









젊은 시절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폴 스미스.





 “첫째는 유머감각입니다. 영국은 ‘미스터 빈’과 ‘몬티 파이튼’(Monty Python: 1960년 말 BBC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국의 코미디 그룹)의 나라죠. 독특한 안감 패턴, 색깔이 다른 버튼 등 장난스러운 의외성이 유머감각과 통합니다. 둘째는 전통에 대한 사랑, 셋째는 장인정신이죠. 저는 전통을 사랑해요. 옛날처럼 수공예로 하는 게 아니지만 단춧구멍처럼 작은 디테일까지도 신경 쓰는 게 영국 특유의 장인정신입니다.”



 폴 스미스는 옷뿐만 아니라 가구와 자동차, 자전거도 디자인한다. 여러 분야 디자인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경영 기초가 탄탄하고 균형을 유지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에서 균형 유지를 하는 건 모든 기업이 바라는 거죠. 문제는 어떻게 유지하느냐 아닐까요.



 “한편에선 재정을 탄탄하게 운영하며 퀄리티를 유지하고, 다른 한편에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요. 흥미로운 것, 강렬한 캐릭터가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해요. 조직과 아이디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게 핵심 비결이죠. 패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죠. 좋은 기사를 써야 하고, 광고 수주나 판매부수도 안정돼야 하듯이 말입니다.”



●회사가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많은 회사는 경제가 나빠지면 감원을 하고, 출장도 줄이고, 지출을 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경제가 나빠진다고 해서 특별히 바꿀 것도 없어요. 예를 들면, 회장이 항상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페덱스나 DHL을 쓰고, 만날 비싼 레스토랑에서 가서 밥 먹는 등 흥청망청 쓰면 경기가 안 좋을 때 줄여야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오지 않았어요. 검소하고 겸손하게 해왔죠. 폴 스미스의 진짜 특이한 점을 말씀해 드릴까요. 우리는 절대 대출을 받지 않아요.”



●15세에 학교를 그만두셨죠.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수장이 됐는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달랐겠죠. 저는 대학을 가지 않은 대신에 정말 모든 분야를 다 경험해 봤잖아요. 이런 얘기 들어봤어요? “해보지 않고 그것을 할 수는 없다(You can’t do it without doing it).” 저는 디자인부터 패턴 만들기, 물건 나르기, 영수증 발급하기, 공장 관리하기 등 정말 많은 일을 다 해봤거든요. 이 경험이 결국엔 큰 도움이 된 거죠. 만약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면 디자인만 알고, 지금처럼 두루 아는 사람(all-around person)이 될 수는 없었겠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학교가 재미없었어요. 수학과 지리를 잘 못했는데,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죠.”



●직원들에게 “현실을 알아라(be down-to-earth)” “겸손하라(be humble)”고 강조하신다고 들었는데, 특히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제 신조이니까요. 패션 산업은 화려하지만 어디까지나 ‘일(job)’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패션계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들도 많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어떤 사람들이라도 훌륭한 면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야죠. 간호사든,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이든, 돈이 없는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물과 음식이 없는 사람들도. 겸손해야 합니다. 소비자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 그의 한국 방문은 2박3일 일정이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서울의 북촌과 부암동, 리움 미술관을 방문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리움에 꼭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렘 쿨하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등 세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축물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 미술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특히 백자가 좋았다고 꼽았다. “순백색의 자기, 그걸 뭐라고 부르죠?” 하고 그가 묻자 옆에서 직원이 ‘백자’라고 우리말로 가르쳐 주었다. “백자! 이것을 백자라 부르는 것은 이번에 알았지만 좋았어요”라고 덧붙였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기 브랜드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자인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 디자인, 그외의 것들, 패션산업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해요. 학생이라면 방학에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세상엔 정말 많은 디자이너가 있죠. 여기서 성공하려면 흥미롭고, 독특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정말로 입을 수 있는(wearable) 옷을 디자인해야 해요. 그런데 많은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보면 너무 복잡해요. 입을 수 없는 것들 투성이죠. 입을 수 있게, 좀 더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디자이너의 길로 이끈 열일곱 시절의 자전거









어린 시절 자전거 타기를 즐긴 폴 스미스.



1946년 노팅엄에서 태어나 자란 폴 스미스는 15세 때 학교를 그만뒀다. 공부를 잘 못했고, 오로지 사이클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 학교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도 별 미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7세 때 자전거를 타다 큰 사고를 당해 3개월 동안 입원해야 했다. 선수의 꿈도 접었다. 그에게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시련을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이 사고를 꼽았다. 그러나 “나쁜 일을 치르고 나서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자전거 사고 덕분에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는 얘기였다.



 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 새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퇴원 후 친구들이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이 예술 전공 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맥줏집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패션 디자인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가게 여는 것을 도와주고, 그곳에서 6년을 일하며 패션 산업 안으로 발을 디뎠다.



 밤에 학원을 다니며 재단하는 법을 배우고, 왕립예술대학(RCA)에서 패션을 전공한 여자친구 폴린(현재 그의 아내)의 도움을 얻어 70년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스물네 살 때였다. 76년 파리에서 ‘폴 스미스’ 라벨을 붙인 자신의 첫 컬렉션을 선보였고, 79년엔 런던 코벤트가든 거리에 첫 ‘브랜드’ 매장을 열었다.



 폴 스미스의 주특기, ‘서로 상반된 것들 갖고 놀기(playing with the opposites)’는 디자인과 경영에서 모두 발휘됐다. 전통에 기발한 재치를 가미한 디자인, 참신한 디자인 감각에 더해진 꼼꼼한 사업가 수완은 그에게 무기가 됐다.



 폴 스미스에게 자전거 사고 이후의 큰 시련은 무엇일까? 대답은 “없다”였다. 인터뷰를 하던 그가 갑자기 재킷을 벗더니, 다음엔 조끼를 벗었다. 카메라 기자를 쳐다보며 “준비됐어요?” 하고 묻는 눈빛에 장난기가 그득했다. 양손으로 셔츠를 풀어헤치니 하얀 티셔츠에 “하루 하루가 새로운 시작이다(Everyday is a new beginning)”라고 쓰인 문구가 보였다.



 “폴은 낙관적이야.” 살아오며 그가 제일 많이 들었다는 말이다. 최근 폴 스미스가 론칭한 향수 이름이 ‘옵티미스틱(Optimistic)’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했다.



 그는 요즘에도 가끔 자전거를 탄다.



j 칵테일 >> 서면 추가질문에 음성 녹음 답변











취재기자들은 가끔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하기도 한다. 기사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가벼운 질문들은 그렇게 묻는다. 폴 스미스를 만났을 때도 그렇게 할 요량이었다. 질문 하나 하나에 친절하게 답변하는 그를 보며 지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정시에 마무리했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사진기자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자 촬영에 100% 몰입하는 그에게 취재기자가 말을 걸 틈은 전혀 없었다. 빡빡한 스케줄을 앞둔 그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솔직히 아쉬웠다.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에 더 묻고 싶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떻게 할까. 그를 수행하는 직원에게 질문을 보내며 가능하다면 답변을 음성 파일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그의 꽉 찬 일정을 알고 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시간 뒤 e-메일이 도착했다. 그의 음성 답변이 파일로 첨부돼 있었다. 질문 하나 하나를 짚으며 마치 기자와 마주 앉은 듯 스마트폰을 마이크 삼아 답변하는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인터뷰 때 기자와 마주 앉아 그가 하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관계에도 균형이 중요해요. 지금의 인터뷰도 그래요. 저에게도, 기자에게도 좋은 인터뷰가 되길 바라요. 제가 생각하는 균형이란 이런 거죠.”



 그는 자신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잘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직원들, 고객, 다른 모든 사람과 소통을 통해 자신이 그저 돈만 벌려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가슴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한다는 말, “be humble”, 빈말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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