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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삼성더러 ‘모방자’라던 잡스도 처음엔 ‘흉내쟁이’였다

중앙일보 2011.04.23 00:43 종합 20면 지면보기



애플, 닌텐도, 보잉, 맥도널드 … 시대 이끄는 기업들의 비밀





 카피캣

오데드 센카 지음

이진원 옮김, 청림출판

288쪽, 1만5000원



카피캣(Copycat). 시쳇말로 ‘흉내쟁이’쯤 되겠다. 최근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공개석상에서 삼성전자 등 다른 IT업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쓴 단어이기도 하다. 갤럭시탭 등 여타 태블릿PC가 자사의 아이패드를 베꼈다는 주장이었다. 급기야 지난 15일엔 갤럭시S와 갤럭시탭을 두고 특허침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과 잡스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애플에 한 가지 반문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네가 창조했다는 제품이 100% 혁신의 산물이었느냐는 것이다. 매킨토시가 자랑하던 비주얼 인터페이스도 사실은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의 작품이었고, 잡스의 애플 복귀 후 취했던 PC사업 전략도 IBM을 따라한 것 아니었느냐는 말이다.









‘아이패드2’를 시연해 보이고 있는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중앙포토]



 이런 질문에 뜨끔할 기업은 비단 애플뿐 아니다. 저자는 그간 경영학 교과서에서 혁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기업도 따지고 보면 모방이 출발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제트여객기의 대명사 보잉의 경우, 1950년 빌 앨런 사장이 판버러 에어쇼에서 타사의 세계 최초 제트 여객기를 보고 사업의 힌트를 얻었다. 닌텐도는 게임 콘솔 제조업체 아타리가 75년 출시한 퐁(Pong) 비디오 게임의 모방회사 75곳 중 하나였으며, 맥도널드는 1921년 설립된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점 화이트캐슬의 후발업체였을 뿐이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모방의 효과는 상당하다. 일단 선도기업이 애써 닦아 놓은 길에 무임승차하면서 연구개발(R&D)·마케팅 비용을 확 줄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를 차별화된 서비스나 차세대 기술 개발에 쓸 수 있다. 이처럼 모방기업이 카피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최초 혁신기업이 쓴 액수의 60~70%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방 자체가 절대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무작정 복제품을 쏟아내다 큰 망신을 당하거나 심지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도 비일비재하다. 미국 항공산업이 좋은 예다. 저가항공 시장을 개척하며 주가를 높이던 사우스웨스트를 따라 잡기 위해 콘티넨탈에어라인스·유나이티드항공·델타 등 쟁쟁한 대형항공사들이 저마다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나같이 사우스웨스트의 단순한 요금 구조를 베꼈고, 기내식을 없애고 항공기·승무원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비용을 줄였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콘티넨탈의 저가항공사 ‘칼라이트’는 모회사의 경영마저 위태롭게 하다 사라졌고, 델타가 한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야심 차게 내세운 새 브랜드 ‘송(Song)’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선도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따르지 못한 채, 기존 시스템과 무리하게 조화시키려다 죽도 밥도 안된 것이다.



 반면 중소 신생업체인 제트블루·웨스트제트(캐나다)·이지제트(유럽)의 성적표는 달랐다. 동일기종을 사용하는 등 기본 가치는 따르되, 가죽시트·개인스크린 제공, 주요공항 운항 등 사우스웨스트가 없는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환경에 맞게 적절히 적용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다.



 저자는 이들을 혁신적(innovator) 모방자(Imitator), 즉 ‘이모베이터(Imovator)’라 불렀다. 처음부터 ‘창조적 파괴자’나 ‘혁신가’가 되라는 경영학 대가들의 조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조언한다. 모방에서 시작한 이모베이터가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집필 의도도 “모방의 가치와 비용을 잘 파악하고, 모방 능력을 발굴하는 데 활용할 프레임워크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각국 기업을 분석하며 혁신적 모방 사례로 한국의 이마트를 언급했다. 월마트의 모방자이면서도 고객과의 상호교류라는 차별화를 통해 한국에서 월마트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분야에서 해외 선도업체를 모방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노력이 한창이다. 그래도 저자는 ‘따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죽지 말라고 독려한다. 오히려 “모방을 혁신만큼이나 가치 있게 여기는 기업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들라”고 주문한다. 여기서 카피캣이 이모베이터로 발돋움 할 창조적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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