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열린 광장] ‘매뉴얼 사회’, 필요한가

중앙일보 2011.04.23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광복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매뉴얼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제품에 대한 사용 안내 설명서다. 둘째는 편람 또는 교범으로 활동 기준이나 업무 절차 등을 명확화한 문서를 의미한다. 특정 조직이나 집단 차원에서 시스템이 움직여 가는 데 필요한 것은 둘째 의미의 매뉴얼이다.



 일본은 대지진 이후 재난 처리는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가 일본이 ‘매뉴얼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데 어느 정도 일치를 보고 있다. 매뉴얼에 대한 맹신으로 매뉴얼 함정에 빠지고, 매뉴얼에 발목이 잡혀서 창의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그동안 매뉴얼을 통해 국가 체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전후 사회의 재건과 경제 부흥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은 매뉴얼의 범위를 뛰어넘어 버렸다. 매뉴얼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그 매뉴얼이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일본 사회가 이같이 매뉴얼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다고 해서 매뉴얼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매뉴얼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계획을 통해 상황 대응능력을 키운다. 또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황이라면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많은 임기응변식 부분이 매뉴얼로 전환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가능한 것은 모두 매뉴얼화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귀찮고 성가시다 하더라도 매뉴얼대로 하는 문화를 키워나가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최근의 시대 흐름이 정보화시대를 넘어 융합시대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융합화가 새로운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는 정보화시대의 매뉴얼로는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가 곤란하다.



 정보화시대의 단선적인 따로국밥식 매뉴얼을 갖고서는 융합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의 상황이 이질적인 다른 상황을 불러 일으키고, 국내 상황이 해외 상황과 연쇄적으로 연결되는 다양다기한 문제들은 우리들이 현재 갖고 있는 기술과 지식·서비스들을 모두 혼합해 복합적으로 재구성해야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협력해 서로 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비빔밥식 융합매뉴얼을 만들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일본 대지진 사태로 우리 사회에서도 정부는 물론 기업들이 모두 기존 매뉴얼을 재점검해 정비하겠다고 한다. 융합시대의 흐름에 맞춰 매뉴얼의 틀 자체를 바꾸는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융합과 협력의 새로운 매뉴얼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예상을 넘는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융합시대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안광복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