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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발레리노 김현웅은 왜 주먹을 휘둘렀나

중앙일보 2011.04.23 00:09 종합 23면 지면보기






이동훈(左), 김현웅(右)



2004년 김현웅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국내 발레계는 “우리도 이제 국제 무대에 내놓을 만한 ‘물건’ 하나를 갖게 됐다”며 들떠 했다. 1m87㎝의 훤칠한 키, 길쭉한 팔·다리, 조각 같은 몸매 등 한국인 발레리노의 신체 컴플렉스를 단숨에 날릴 만한, 빼어난 스펙(조건)이었다.



 독특한 느낌의 얼굴은 그만의 아우라를 갖게 했고,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이듬해 동아콩쿠르에서 금상을 받는 등 모든 게 탄탄대로였다. “딴 거 다 필요 없어. 김현웅의 탄탄한 허벅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라는 여성 팬이 늘어갔다. 이원국·김용걸의 뒤를 잇는, 아니 그 이상의 국제적인 발레 스타 출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이후 기대에 못 미쳤다. 최근 김현웅(31)의 공연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예민한 몸놀림은 좀체 찾기 힘들었다. 무대에서 실수하는 일도 잦았다. 경쟁자 없이 오랫동안 국내 1인자 자리를 지켜왔기에 긴장감이 떨어졌을 게다. 최근 몇 년간 그에게 해외 발레단의 러브콜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누가 잡든, 상황이 어떻든 그는 떠났어야 했다. 더 큰 물에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했건만, 그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렀다.



 2008년 후배 이동훈(26)이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한 이동훈은, 김현웅으로선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보이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에 ‘훈남’ 스타일의 외모는 오히려 스타성이 강했다. 춤의 기본기는 약했지만 순발력과 유연성은 뛰어났다. 입단 3개월 만에 주역을 따내는, 그야말로 초고속 성장이었다. 발레단에서도 그를 밀어주는 분위기가 확연했다. 김현웅의 아성이 흔들리며 무게 중심이 자연스레 이동훈에게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김현웅으로선 불안하고 초조했을 게다. 그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지난달 25일, 김현웅은 술자리 형식을 빌려 후배들을 집합시켰다. 자신을 치고 올라오려는 이동훈의 코를 이번 기회에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훈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성이 오갔다. “남자답게 얘기하자”며 둘만 따로 화장실로 갔다. 거기서 김현웅은 이동훈을 흠씬 두들겨 팼다. 광대뼈가 함몰되고 턱뼈가 돌아가는, 전치 4주 이상의 부상이었다. 국립발레단 사상 최악의 폭행사건이었다. 결국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김현웅은 국립발레단을 떠나게 됐다.



 뭔가 연상되지 않는가. 올 초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블랙 스완’ 말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나탈리 포트먼은 어렵게 따낸 ‘백조의 호수’ 주인공 역할을 가장 친한 동료에게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포트먼이 상상 속에서만 복수의 칼날을 꺼냈다면, 김현웅은 직접 주먹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발레 무용수의 불안감이 진짜 극심하구나”라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두어야 할까. 이번 폭행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장본인 김현웅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김현웅의 ‘욱’하는 성질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국내 남성 무용수층이 너무 얇다는 점이 있고, 사건 발생 한달이 지나도록 쉬쉬하다 여론에 떠밀려 김현웅을 내쫓은 국립발레단의 어수룩한 일처리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주먹다짐은 최근 ‘지젤’ 전회 매진 등으로 한껏 오른 발레 부흥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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