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억 연봉 증권맨 박차고 … “난 선생이다”

중앙일보 2011.04.19 03:00 종합 20면 지면보기



37세에 교사된 박제원씨
어린 시절 꿈 이루려 야간대 다니며 자격증 따



전주 완산고 박제원 교사(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참여하는 논술 봉사 모임 ‘노둣돌’ 소속 선생님들이 16일 오후 전주 서신동 물댄 동산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미소 짓고 있다. [전주=프리랜서 오종찬]





16일 오후 2시 전북 전주 지역 논술 봉사 교사들의 모임 ‘노둣돌’의 수업 첫날. 서신동 물댄동산도서관 강의실에서는 토요일 오전 수업만 마치고 참석한 40여 명의 학생과 7명의 교사가 완산고 박제원(45) 교사를 숨죽이고 쳐다봤다. 증권업계에서 연봉 1억원대를 받던 ‘신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 학교 교사로 변신한 그의 명강의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말에 오르기 쉽도록 받치는 돌’이란 뜻의 노둣돌은 전주·익산·정읍 지역 교사들이 박 교사를 중심으로 올 초 결성한 논술모임이다.



 “예시로 든 A, B, C 세 사람의 생각을 평가해 볼까?” “A는 주장이 한쪽에 치우쳤고요, B는 논거 없이 의견만 있어요. C는 질문과 관계없는 답변을 했습니다.”



 “모두 분석을 잘했어요. 하지만 평가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열 관계가 드러나야 합니다. 논지에서 벗어난 C보다는 B가, 주장만 있는 B보다는 논거를 토대로 주장한 A가 더 나은 답변입니다.”



 수년째 논술 봉사를 해 온 박 교사와 뜻을 같이해 모인 노둣돌 교사들은 각자 전공을 살려 강의와 첨삭 등 업무를 분담해 왔다. 매주 토요일 3시간씩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친다.



 박 교사는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도였다.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증권 거래 업무를 관리하던 그는 교사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2003년 직장을 그만두고 교사로 변신을 결심했다. 1997년 야간 교육전문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2001년 교사 자격증을 땄고 2년 후 사립인 완산고로 부임했다. 연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감수한 선택이었지만 현실은 꿈꿔 왔던 ‘스승’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실에는 활력이 없었고 부임 직후 가입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념 투쟁에만 치우쳐 학생 교육에 소홀했다. 전교조를 탈퇴한 박 교사는 2004년부터 전주시내 빈민촌에서 야학을 하며 본인만의 교육철학을 실천했다.



 ‘논술 광풍’이 불기 시작한 2005년부터는 토요 논술 수업을 했다. 제대로 된 논술학원이 없던 전주에서 학생들에게 큰 희망이 됐고 2006년에는 다른 학교에서도 수업을 요청했다. 그는 이때 수업을 위해 주말마다 서점에 살며 2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논술지식을 습득했다. 이런 노력은 2007년 전국경제논술대회에서 박진훈(당시 고2·서울대 09학번)군이 대상을 받으며 빛을 발했다. 박군은 17명의 입상자 중 유일한 평준화 지역 일반고 학생이었다.



 그러나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박 교사는 2009년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인공혈관 2개를 심장에 꽂으면서 야학과 논술 수업을 접었다. 하지만 2010년 7월 다시 논술 봉사에 나섰다. 박 교사는 “사교육에 멍드는 공교육을 방관할 수 없어 평생 교사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주=윤석만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