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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피리 부는 소년의 꿈

중앙일보 2011.04.19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 다녀 왔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대받았던 것이다. 남들이야 현빈, 임수정과 같이 참석한다니 부러운 표정이지만 나의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가보기 힘든 도시. 실제로 같은 독일이라도 뮌헨이나 쾰른·프랑크푸르트는 기회가 많지만 베를린은 접근 기회가 아주 드물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직항 항공편도 없다. 나의 속셈은 베를린 필 연주회에 가보는 것이다. 서울에도 아주 드물게 베를린 필이 오기는 하지만 1963년 완공된 유서 깊은 ‘PHILHARMONIE HALL’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직접 가보는 게 나의 꿈이다.



 나의 이 꿈은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386이 그러하듯이 나의 20대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거칠고 불쌍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최루탄으로 인해 눈물 속에 캠퍼스를 드나들지 않은 청춘이 있었던가. 안드로메다 군단 격인 동년배 전경과 격렬한 몸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저녁, 그 시절 나를 위무한 것은 하숙집 달력에 등장한 지휘자들의 흑백 사진이었다. 성음사에서 펴낸 클래식 달력 속의 마에스트로는 고향을 떠나와 외로움에 지친 나의 20대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재였다. 그 흑백 사진을 통해 토스카니니, 볼프강 자발리시, 로린 마젤, 레너드 슬레트킨, 칼 뵘, 조지 셸 등을 눈에 익혔다. 그중에서 한 사람, 헤르베르트 폰 카랴안은 그야말로 나에게는 로망, 그 자체이었다. 35년 동안 베를린 필의 지휘자 겸 종신감독으로 군림한 그는 베를린 필을 세계 정상에 올려 놓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두 눈을 감고 명상하듯 지휘봉을 휘젓는 신비함, 게다가 칠십 나이에 절세 미인인 20대 아내, 빨간 포르셰 자동차 등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래서 언제가 반드시 베를린 필을 가보리라. 그렇게 나의 꿈은 굳어졌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공식적인 일정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필하모니 홀에 갔다. 연중 시즌 티켓은 당연히 매진, 박스 오피스에 간곡하게 부탁했다. 혹시 취소 표가 생기면 호텔로 연락해 달라고. 사흘째 되는 날 전화가 왔다. 나는 한걸음에 반환된 티켓 이틀 치를 구입했다. 베를린의 겨울은 서울보다 휠씬, 지독하게도 추웠다. 100년 만의 추위라는 혹한을 무릅쓰고 이틀 밤 호텔에서 혼자 걸어 베를린 필 연주회에 갔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말러와 스트라빈스키의 밤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오케스트라란 별명에 걸맞게 베를린 필은 음악 그 자체였다. 특히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카라얀 서커스(Zirkus Karajani)’로 불리는 전용 홀의 위엄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연주회가 끝난 깊은 밤, 베를린의 차가운 밤을 혼자 걸으며 나는 생각에 잠긴다. 푸르트 뱅글러도, 첼리비다케도, 카라얀도 가고, 베를린 필을 동경하던 꿈 많던 20대 청년도 갔다.



 나의 별명은 ‘피리 부는 소년’이다. 소년처럼 유치찬란하고 꿈이 많다고 해서 주위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딴은 맞는 말이다. 나는 어른답지 않게 여전히 유치한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오랫동안 꿈을 꾼 자, 마침내 그 꿈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을 아직까지도 철석같이 믿는 철부지 소년과 다름없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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