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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독도의 밤

중앙일보 2011.04.19 00:19 종합 35면 지면보기






문창극
대기자




독도를 보고 싶었다. 일본의 모든 중학생들이 내년부터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배우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우리 땅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싶었다. 고구려 옛 땅의 역사를 연구하며, 독도연구소도 운영하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독도 방문을 주선했다. 독도는 하루 한 차례 관광선이 운행되나 파도로 인해 접안할 수 있는 확률은 40%에 불과하다. 배가 계류한다 해도 독도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특정도서’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섬에 오르지 못하고 선착장에만 머물러야 한다. 마침 독도를 방문한 정부 관계자 일행을 만나 그 무리에 끼어 독도에 상륙할 수 있었다. 소중한 기회여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무겁고 깊게 내디뎠다. 이 땅을 마음속으로 축복하면서 430발짝 끝에 가파른 언덕을 올라 경비대에 도착했다. “천 년 후에도 대한민국 영토입니다”라는 경비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는 ‘韓國領’이라는 표시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독도에서 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독도 바다를 지키는 해양경찰 5001함에서 하룻밤을 지낼 기회를 얻었다. 바로 그날 아침에도 일본 해상보안청 3000t급 경비함 다이센함이 독도를 선회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일본 경비함은 지난해 95회, 올해 들어서만도 26회 독도에 접근했다가 돌아갔다. 마치 자기 땅임을 확인하듯이… 일본 경비함은 우리 영해인 독도 주변 12마일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므로 그 밖을 돌고, 우리 경비함은 12마일 선을 따라 대치 상태에서 한 바퀴 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런 행사가 벌어진다. 우리가 지키고 있지 않으면 언제 그들이 독도로 들이닥칠지 모른다. 갑자기 괴선박 출현이라는 함내 방송이 나왔다. 독도 주변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서는 그 소속을 확인하는데 미확인 선박 두 척이 레이더에 잡혔다. 조타실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현장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한 목표물은 레이더의 착오였고, 다른 목표물은 우리 쪽 소형 어선이었다. 독도는 이렇게 지켜지고 있었다.



 독도 주변은 평균 수심이 1500m 이상이다. 이런 깊은 바다 속에서 어떻게 바위섬 하나가 우뚝 솟아났는지 불가사의하다. 독도가 없었다면 동해는 우리 바다가 될 수 없었다. 독도가 동해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올랐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우리 바다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가 소중한 것이다. 독도는 동해의 푸른 물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요, 보석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 섬을 탐내지 않았더라면 우리 국민이 이토록 독도의 귀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어쩌면 3000개 섬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지 않았을까? 일본이 이 섬을 넘봄으로써 우리는 강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조상이 물려준 한 뼘의 땅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오히려 일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대해 생각했다. 한·일 양국이 경제나 문화적으로 가까워졌고 미래에는 안보협력도 필요할 텐데 왜 이렇게 삐걱거리는 것일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는 협력하며 사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과거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 상처는 무엇인가. 일본의 영토 욕심에 한반도가 희생된 일이다. 화해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일본이 영토 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독도가 자기 영토라 주장하는 일본은 아직 진심으로 변화하지 않은 것 아닌가. 그러니 신뢰가 쌓이지 않는 것이다. 화해를 하려면 진심 어린 사과와 이를 받아들이는 용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쓰나미를 당한 일본을 보고 연민의 감정으로 도왔다. 진정한 용서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마음을 외면했다.



 강토는 그냥 보전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 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조국이 부를 때 “여기 내가 있습니다”라고 나서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강토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5001함에는 20대의 처녀 경찰 4명이 남자 대원들과 똑같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이 어린 그녀들의 기상이 갸륵했다. 밤이 되자 특별행사가 배 안에서 벌어졌다. 해양경찰에 배속된 전투 경찰대원들을 위한 세족식이었다. 함장을 포함하여 간부들이 무릎을 꿇고 이들의 발을 씻겨주었다. 나도 고생하는 50여 명 전체 대원들의 발을 한 사람 한 사람 씻겨주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혹시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대표하는 함장님의 발을 제가 씻겨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함장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듯했지만 말없이 양말을 벗었다. 나는 독도를 지키는 우리 아들딸들의 발을 정성을 다해 씻었다. 반달이 어스름히 비치는 독도의 밤, 우리는 어느덧 나라 사랑으로 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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