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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권이 바뀌면 돌려달라고 할 수 있어 … 소유권 넘겨받아야”

중앙일보 2011.04.18 01:58 종합 12면 지면보기



외규장각 도서 145년 만에 귀환하던 날 … 환하게 웃은 박병선 박사



재불(在佛) 학자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의 일부가 145년 만에 한국으로 귀환한 14일(현지시간) 파리의 한국대사관에서 이 도서들을 찾아낸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초 대장암 수술을 받은 그는 건강에 관해서는 “암은 치유된 것으로 진단받았다”고 말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14일 오전(현지시간)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를 떠나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자리 잡은 바로 그 순간, 기자는 박병선(83) 박사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었다. 파리 한국대사관 3층의 12㎡ 남짓한 그의 연구실에서였다. “조금 전에 책들이 중앙박물관으로 잘 옮겨졌다”고 소식을 전하자 박 박사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박 박사는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인물이다.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 귀중한 도서들은 프랑스의 어느 창고나 도서관 서고에 분류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쌓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해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로 기력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크고 또박또박하게 얘기해야만 말을 알아들었다. 목소리도 나직했다. 그래도 외규장각 문서에 대한 기억은 또렷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금 전에 책들이 중앙박물관으로 잘 옮겨졌습니다.



 “가기는 갔군요. 그런데 마음이 좀 아픕니다. 반환이었으면 얼마나 기쁘고 좋았겠습니까.”(외규장각 도서들은 5년마다 임대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으로 한국으로 ‘대여’됐다.)



 -한국 일각에서는 사실상 반환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일하는 사람들도 바뀌고 하면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갱신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겁니까. 국민이 합심해 소유권을 넘겨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병도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과정을 얘기해 주시죠.



 “1955년에 유학 올 때 대학 은사인 이병도(1896∼1989·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 선생께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서들을 약탈해 갔다는 얘기는 있는데 확인이 안 된다. 가면 한번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도서관·박물관, 해군부 본부를 10년 이상 돌아다니며 목록들을 뒤졌는데 흔적도 없었어요. 그러다 75년에 베르사유궁에 파손된 책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봤는데 사서가 한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책들이 있다는 거예요.”



 -도서들을 그때 확인하신 겁니까.



 “며칠 뒤에 열람허가증을 들고 가니 사서가 파란 천으로 씌워진 큰 책을 한 권 들고 나옵디다. 책을 펼쳤는데 먹향이 코로 가득 들어오며 온몸에 소름이 쫙 …. 멍하니 한동안 책만 바라보고 있는데, 사서가 다가와 ‘어디 아프냐’며 걱정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 그 시절에 유학은 어떻게 오시게 된 겁니까.



 “해방 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과에 입학해 6·25 끝난 뒤 졸업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보고 막연히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어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입증하셨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제가 공부 때문에 국립도서관에 자주 다니다 사서들과 친해져 69년에 임시직원이 됐습니다. 하루는 사서가 ‘직지’를 보여주며 이게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것을 고증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인쇄기법과 비교해 직지가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프랑스 정부에서 약간의 연금을 받아왔고, 젊었을 때 벼룩시장을 돌며 사 모은 한국 골동품을 팔아 그동안 연구비로 썼습니다. 3년 전 병인양요에 대한 책을 냈는데 지금 후속편을 준비 중입니다. 수술만 아니었으면 이미 끝냈을 텐데 …. 죽기 전에 마무리 해야죠.”



파리=이상언 특파원



◆박병선=1928년 서울에서 백범 김구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뒤 서울대 사대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와 소르본대에서 한국의 민속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백림 사건을 계기로 귀화해 국적은 프랑스다.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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