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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국과 이승만, 그리고 4·19

중앙일보 2011.04.18 00:3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해마다 맞는 4·19는 언제나 새롭지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민주화 바람이 세계를 휩쓰는 올해의 4·19는 감회가 남다르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에 맞서 청년학생들이 외쳤던 함성을 51년이 지난 이 시간 지구의 저편으로부터 다시 듣는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운 탓이다. 4월 혁명과 중동·아프리카를 휩쓰는 ‘민주·민중혁명’은 ‘민주’와 ‘자유’가 시공을 뛰어넘은 인류 최후의 정의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구촌의 또 다른 4월 혁명을 기다리며 맞는 4·19의 아침, 자유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과 억압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북한을 생각해 본다. 남과 북은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50여 신생국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부상했고, 교역 규모만으로는 세계 7위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등극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북한은 어떤가. 국가경제력은 남한의 37분의 1, 1인당 소득은 20분의 1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 평균수명은 남한 주민에 비해 13년이 짧다. 11살짜리 북한 어린이 평균 신장은 남한보다 20㎝ 가까이 작고, 체중은 10㎏이나 부족하다. 분단 60여 년 동안 남북한 주민의 유전자(DNA)가 변형돼 아예 딴 민족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민주화는커녕 66년 왕조 통치도 모자라 3대 권력세습이 진행 중이다.



 우리의 산업화를 ‘민주화’가 추동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민주화가 결여된 산업화는 영혼 없는 비만증 환자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경제적 풍요지만 민주화는 정신과 영혼의 충만에 해당될 것이다. 산업화가 민주화를 앞당긴 측면이 있지만 산업화 역시 민주화로부터 동력을 부여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4월 혁명정신이 산업화 세력을 감시하고 채찍질함으로써 ‘건강한 산업화’에 자양분을 제공했다고 자부한다.



 지난주 중앙일보 박보균 편집인이 쓴 ‘4·19 세대와 이승만의 화해’를 읽었다. 글에는 나의 이름을 꼭 집어 “이기택씨는 ‘4·19 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북한 민주화’라고 역설한다. 그는 4·19의 간판이다. 그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도 이승만의 성취와 공존해야 한다. 4·19와 이승만의 화해는 현대사의 성숙”이라고 했다. 분명히 해둘 게 있다. 4월 혁명은 대한민국 건국과 자유민주헌정 등 ‘이승만의 성취’를 부정한 바 없다. 단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자유당의 부정, 비리, 불의에 대한 부정이었다. 우리의 지향점은 자유·민주헌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이상과 맥이 닿는다.



 4월 혁명이 고발하고 저항했던 헌정파괴와 독재, 부패, 차별, 부조리는 그 근거를 잃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념갈등과 정쟁, 지역, 계층 갈등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4월 혁명을 추동한 동기 중 하나인 남북 분단의 모순은 극단을 달리고 있다. 4월 혁명의 목표는 한반도 남쪽만의 민주화가 아니다. 불의와 부정으로부터 한반도와 한민족 전체를 해방시키는 것이었음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따라서 4월 혁명은 민족 분단이 극복되고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완결을 말할 수 없다. 4월 혁명정신으로 다시 힘과 지혜를 모아 북한 민주화를 이룰 때 남북 분단의 모순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다. 3·1 운동과 4·19로 국권 상실과 독재와 헌정 중단의 질곡을 건너온 오늘이기에 더욱 더 자랑스럽다. 4월 혁명 51주년을 맞아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어두운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잊지도 말자. 그러면서 진정한 현대사의 성숙을 위해 역사와 화해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장정에 다 함께 나설 것을 제의한다.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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