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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셈 뻔한 FTA 포퓰리즘

중앙일보 2011.04.18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한국 정치의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부결했다. 출석의원 6명의 의견조차 제대로 모으지 못한 이날 회의는 한국 정치의 압축판이다. 여야가 격돌하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등장한다. 그는 소위 위원이 아닌데도 회의실에 들어와 위원장의 팔을 잡고 표결을 저지했다. 강 의원은 한복 차림으로 ‘공중부양(空中浮揚)’하는 사진으로 이미 세계적 유명인사다. 인지도만 따지면 누구도 그를 따라올 수 없다.



 가장 어이없는 장면은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의 퇴장이다. 그는 “한·EU FTA를 지지하지만 몸싸움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기권했다”고 퇴장 이유를 설명했다. 홍 의원은 독자행동을 우려해 소위 위원직에서 물러나 달라는 한나라당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굳이 회의에 참석해 튀는 행보를 한 배경이 궁금하다. 혹시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이미지 관리를 위한 이기적 행동이 아닌지 묻고 싶다. 오죽하면 야당 원내대표까지 “FTA 표결에 기권한 홍 의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을까.



 한·EU FTA 비준안은 여전히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다룰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외통위원장인 남경필 의원은 “물리력을 동원한 의사 진행에 참여하면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야당이 계속 저지한다면 오랫동안 공들여온 한·EU FTA 비준안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남 위원장과 홍 의원은 앞으로 어떤 국가 중대사라도 몸싸움만 벌어지면 손을 뗄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는 강기갑 의원 한 사람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이미지에 신경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치열함이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현안을 놓고 강인한 의지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선의 해법을 찾는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 정치인들 중 누가 한·EU FTA 처리 과정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가. 국회는 뷰티숍이 아니다. 포장된 이미지로 선수(選數)만 쌓아 정치생명을 연장한들 결코 차세대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우리 국회의 일그러진 자화상(自<756B>像)은 EU와 비교하면 보다 분명해진다. 27개 회원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숱한 업종들을 끌어안고 있는 EU는 한국보다 사정이 훨씬 복잡하다. 그런 EU 의회가 지난 2월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동안 수많은 토론을 통해 건설적인 대안을 끌어내고, 끊임없이 공감대를 넓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비해 여당인 한나라당은 집안 내 의견조차 제대로 통일시키지 못했다. 일부 의원들은 속이 뻔히 보이는 포퓰리즘에 빠져 우리 경제에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러다간 7월에 한·EU FTA를 발효시키기로 한 국가 간의 약속을 어기고 발효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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