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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회폭력

중앙일보 2011.04.18 00:29 종합 35면 지면보기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쓴 『의회 지침서』엔 이런 게 있다. “야유·기침·침뱉기·떠들기·일어서기, 말 끼어들기, 걸어다니기 등으로 동료 의원의 연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 교실에 붙어 있을 법한 내용이다. 그만큼 옛 미국 정치인의 수준은 낮았다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전범이라는 미 의회에서도 폭력이 난무한 적이 꽤 있다. 1798년엔 하원의원인 로저 그리스월드와 매튜 리옹이 지팡이와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싸웠다. 리옹이 자신의 경력에 시비 거는 그리스월드에게 침을 뱉은 탓이다. 50여 년 뒤 1856년엔 더 살벌했다. 남부 출신 프레스턴 브룩스 하원의원이 상원에 난입, 찰스 섬너 상원의원을 지팡이로 마구 내리쳐 피범벅을 만들었다. 섬너가 몸이 아픈 사촌 앤드루 버틀러 상원의원을 모욕했다는 이유였다. 그 후 의사당엔 호신용 지팡이나 권총을 소지한 의원들이 늘었다.



 20세기에도 의회 폭력은 여전했다. 1902년엔 같은 민주당 상원의원인 벤저민 틸먼이 존 맥로린에게 달려가 주먹을 날린다. 필리핀 지배가 부당하다는 틸먼을 향해 맥로린이 험담을 퍼부은 것이다. 의사당은 아수라장이 됐고 말리던 의원들도 흠뻑 두들겨 맞았다.



 의회 폭력이 심했긴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의회 바닥엔 칼 2개 길이만 한 폭의 붉은 평행선이 그어져 있다. 이 ‘소드 라인(Sword Line)’을 두고 마주 앉는 여야 의원들은 이 선을 절대 넘어선 안 된다. 과거 칼을 찼던 의원들 간 싸움을 막기 위해서였다. 욕하는 의원도 많아 이들을 시계탑 빅벤 내 작은 방에 가뒀다. 이들은 의회 모욕죄로 엄청난 종소리를 견뎌야 했다.



 그랬던 영미 의회에서 어느덧 주먹질은 사라지고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풍토가 뿌리내렸다. 여기엔 폭력 정치인은 뽑지 않는 유권자들의 성숙함 덕이 컸다. 더불어 의회 자체의 노력도 이 못지않았다. 미국 상원 규범의 전반 20개 조항 중 10개가 의원의 언행과 품위에 대한 규정이다. 이들은 갈수록 엄해져 1902년 틸먼-맥로린 간 싸움 후엔 “어떤 의원도 부적절한 행위와 동기를 다른 의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한·EU FTA 처리 과정에서 국회 내 몸싸움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날치기와 국회 폭력이 반복될 때마다 비판이 쏟아지지만 노상 흐지부지돼 왔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철저하고 상세한 규정 마련과 추상같은 집행이 해결책일 성싶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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