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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이야기 ① 전남 담양 전상운·박지현씨 가족

중앙일보 2011.04.18 00:09 경제 21면 지면보기

저마다 얼굴이 다르듯 각 가정이 삶을 꾸려 가는 모습도 모두 다릅니다. 행복이다, 성공이다, 남이 함부로 평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요. 그 이야기를 하나 둘 펼쳐 보이는 ‘우리 가족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잘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엿보는 기회입니다.




시골살이 10년, 아토피 나았지만 안 돌아갈래요





대문이 따로 없는 집 입구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소희·전상운씨·형진·박지현씨. 작은 집 모양의 우체통은 해마다 딱새가 둥지를 트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후 네 시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중학교 2학년이라 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가족이 모두 등장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서둘러야겠다 싶었다. 요즘 어느 집에 가 봐도 제일 바쁜 게 아이들이다. 학원 스케줄에 맞춰 후다닥 들어와 가방만 바꿔 들고 나가는 통에 말 한번 못 시켜보기 일쑤였다.



아이에게 언제까지 집에 있을 거냐고 물었다. “이제 집에 온 건데요.” 도리어 의아해 하는 대답이다. 옷을 갈아입은 아이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원두커피를 내리고 우유거품을 내 카페라테를 만들어 왔다. 손님이 오면 커피 대접은 자신이 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은 뒤 아이는 한참을 마당에서 놀았다. 동생과 배드민턴도 치고, 쑥도 캤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누워 잠깐 낮잠도 잤다. 시골생활 10여 년. 전남 담양군 고서면 금현리 전상운(45·치과의사)씨 집에선 중학생의 오후도 길고 평화로웠다.



담양에서 글=이지영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딸 아토피 고치러 들어온 시골









베어낸 뽕나무를 다듬어 만든 옷걸이.



동갑내기 부부 전상운·박지현씨의 시골생활은 2000년 2월 시작됐다. 1996년 결혼해 신혼살림은 광주광역시 봉선동의 한 아파트에서 차렸다. 주변 환경과 교육여건이 좋아 ‘광주의 대치동’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단독주택에서 살았던 박씨는 아파트 생활이 영 마뜩찮았다. 이듬해 낳은 딸 소희(14)의 아토피 피부염이 이들의 시골행을 재촉했다.



“피부가 접히는 부분마다 너무 긁어 피가 줄줄 흐르곤 했어요. 주말에 야외로 나가 초록을 보고 오면 좀 낫고 그랬죠.”



TV 다큐멘터리 작가였던 박씨는 “아파트에선 글이 한 줄도 안 써졌다”고 했다. “생각이 차오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부부는 전씨의 병원(광주시 산수동)에서 가까우면서도 풍광이 좋은 시골 땅을 찾아 나섰다. “주변에 다랑이 논(경사진 산비탈에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이 펼쳐진 땅을 샀어요. 산골 분위기가 나서 마음에 꼭 들었죠.” 땅 992㎡(300평)에 연면적 132㎡(40평)짜리 2층 집을 지었다. 땅값과 공사비는 모두 1억2000만원이 들었다. 당시 광주의 99㎡(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거처를 옮기자 소희의 아토피 증상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2002년 태어난 아들 형준이는 아토피가 뭔지 아예 모르는 시골아이로 자랐다.



‘나는 행복하다’ 7세 꼬마가 쓴 일기



시골 생활은 식생활부터 바꿔놨다.



“배달 음식을 시킬 수 없으니 굶지 않으려면 직접 만들어 먹을 수밖에요. 자연히 건강식을 먹게 됐어요.”



재료가 없다고 금방 뛰어가 살 수 있는 가게도 주변에 없었다. 있는 것으로 해먹는 기술이 날로 늘었다. 마당에 나가 꺾어온 민들레나 이름 모를 풀들도 먹을거리가 됐다. 자운영이나 곰방부리 등 시장에선 팔지 않는 나물들도 맛이 기가 막혔다. 외식이 줄자 체중관리가 절로 됐다. 남편 전씨는 10년 전보다 허리가 10㎝(4인치)나 줄었다.



학원에 다니기 힘든 환경. 아이들 공부 문제가 걱정일 법도 했다. 한글을 떼지 않은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희는 첫 수학 시험에서 40점을 받아와 부모를 놀라게 했다. 문제를 읽지 못해 쉬운 계산 문제도 못 푼 경우였다.



“우리 부부보다 주변에서 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괜찮으려나 지켜보는 눈이 많았죠.”



하지만 박씨는 “자연 속에서 실컷 뛰어노는 시간이 아이들의 뇌를 키워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대신 광주의 서점을 들락거리며 책은 열심히 사날랐다. 놀거리 떨어진 시골 밤이 온 가족의 독서시간이 됐다. 다행히 소희의 성적은 점차 올랐다. 3학년부터 하나 둘 100점짜리 시험지가 등장했고, 4학년 2학기엔 첫 올백을 기록했다. 둘째 형진이는 공부 욕심이 더 많단다. 여섯 살 때 혼자 한글을 떼더니 일곱 살부터는 매일 수첩에 일기를 썼다. 박씨는 “초등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며 뿌듯해 한다.



아이들에겐 장난감도, 게임기도 필요 없었다. 땅을 파고, 공을 차고, 동네 개를 보러 다니느라 하루가 짧았다. 여름에는 마당에 고무 풀장을 놓고 물놀이를 했고, 겨울에는 마당 앞 언덕에서 비료 포대 썰매를 탔다. “나는 내일 행복하다. 오후에 눈이 온다고 일기예보에 나왔다. 썰매를 탈 거다. 그래서 내일 행복하다.” 형진이가 일곱 살 겨울에 쓴 일기다.



이웃집 돌며 밥·술·차 ‘3차’ 다반사









1 2층 소희 방. 서쪽 창을 열면 감나무가 바로 앞이다. 매일 오후 저무는 해와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2 꽈리와 나뭇가지로 만든 등갓. 3 담양의 특산물 대나무로도 등갓을 만들었다. 이렇게 ‘친환경’은 이들 가족에게 일상이다. 된장·간장은 물론, 비누와 식초도 직접 만들어 쓴다. 최근 박지현씨는 자신의 친환경 살림 비법을 모은 책 『담양댁의 열두 달 살림법』(수작걸다)을 펴냈다.






인간관계가 더 넓어진 건 전씨 부부도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시골에서 산다니까 집에 놀러오겠다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요. 한 다리 건넌 친구의 친구까지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어요.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왔고요. 인간관계가 열 배는 더 넓어졌을걸요.”



남과만 친해진 게 아니다. 2~3년 전 전씨의 여동생과 박씨의 여동생도 근방으로 이사를 왔다. 소희와 형진이는 고모·이모 집을 오가며 사촌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까지 얻게 됐다.



이웃이 주는 즐거움도 크다. 뭐든 도와주고 나눠 먹으려는 동네 인심이 후했다. 갑작스레 손님이 온 날엔 아이들에게 주전자를 쥐어 옆집으로 보냈다.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직접 담그는 옆집에선 주전자 가득 포도주를 채워줬다. 박씨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생활을 계획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살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적응하기 훨씬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먼저 도시 사람들이 마음의 경계를 풀면 시골의 이웃들과 얼마든지 마음 터놓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씨는 매일 아침 6시 토박이 이웃들과 어울려 동네 뒷산을 함께 오른다. 전씨가 ‘산책반’이라고 소개하는데, 아내 박씨는 ‘수다반’이라고 고쳐 말했다.



“남자들 수다가 보통이 아니에요. 가끔 저녁때 만나면 한 집에서 저녁 먹고, 다른 집에서 술 먹고, 또 다른 집에서 차 마시며 ‘3차’까지 간다니까요.”



그 모임에서 최근 ‘쓰레기를 줍자’란 결의를 했다고 한다.



“농촌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요. 멀칭(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것)용 비닐이나 농약병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어요. 우리 동네엔 반딧불이·다슬기도 사는데, 환경이 훼손되지 않게 우리가 지켜야죠.”



이젠 완전히 ‘시골 사람’이 된 이들 부부의 다짐이다.



주부 박지현씨의 친환경 살림법



봄나물 말리기
① 취·고사리·고비·가죽나물 등을 펄펄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움큼 넣고 살짝 데쳐 낸 뒤 건져 찬물에 담가 헹구고 물기를 뺀다. ② 채반에 고루 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다. 채반 아래에도 바람이 통하게 해 주면 더욱 잘 마른다. 하루 두어 차례 뒤집어 골고루 볕을 쬐어 준다. ③ 다 말린 나물을 투명한 그릇이나 투명한 비닐봉지에 밀봉한 뒤 다시 커다랗고 두꺼운 비닐봉지에 담아 꼭 묶고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모기 퇴치 스프레이 만들기 ① 계피를 소주나 독한 양주 등에 3일 정도 담가 향과 효능을 우려낸다. ② 우려낸 계피 추출물 60mL에 아로마 오일 40~50방울을 섞는다. ‘시트로넬라’라는 오일을 필수로 넣어야 하고, 제라늄·페퍼민트·로즈마리·라벤더 오일 중 2~3 가지를 넣어 섞는다. ③ 오일을 넣은 용액을 섞은 다음 끓여 식힌 물 40mL를 채워 스프레이 용기에 담아 필요할 때 몸에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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