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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⑦ 담배가게식 은행의 몰락

중앙일보 2011.04.18 00:04 경제 9면 지면보기



‘조상제한서’사라진 이유
건설사 회장이 “임원 승진 시켜줄까” 묻자
은행원들 “제게 심부름 시켜 주십시오” 대답



금융권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조상제한서’로 불리는 5강 체제였다. 사진은 1980년대 초반 서울 광교의 조흥은행 본점.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과 통합됐다.





“조상제한서.” 한때 금융계를 좌지우지했던 5대 시중은행을 이렇게 불렀다.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이 그것이다. 이들 빅5 중 현재까지 제 이름으로 살아남은 곳이 없다. 모두 1997년 외환위기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으로,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으로 합병됐다. 제일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에 팔려갔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합병을 거쳐 우리은행이 됐다. 이것은 모두 ‘담배가게식 경영’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율경영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한 탓이다.



 1970, 80년대 조상제한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들 은행 뒤엔 정치권력과 경제부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장에선 자금 수요에 비해 자금 공급이 늘 부족했다. 대규모 대출을 결정하는 과정엔 정·관계의 입김이 끼어들었다. 은행 인사에도 정부가 깊숙이 개입했다.



 80년대 들어 은행이 민영화됐다. 80년 12월 5일 발표된 ‘일반은행 경영자율화 방안’에 따른 것이었다. 한일·서울신탁·제일·조흥은행이 차례로 민영화됐다. 현대·삼성·LG·쌍용 등 주요 대기업들이 은행 지분을 소유했으나 은행 지분 소유한도는 4%(지방은행은 15%)로 제한됐다. 여전히 은행은 주인이 없었다. 경영진 선임에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겉으로 보이는 규제는 상당수 사라졌다. 은행감독원장이 갖고 있던 은행 임원 선임·승인권을 없앴다. 은행의 조직·정원·보수·예산도 자율에 맡겼다. 하지만 은행 임원을 사실상 정부가 내정하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은행들은 자율경영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5대 시중은행의 공신력이 크게 떨어졌다.



 조흥은행은 80년 ‘조직개편 연구반’을 신설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에 휩쓸리며 410억원의 부실채권이 생기고 말았다.



 상업은행은 이른바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데다 83년 명성그룹 사건까지 겹쳤다. 명성그룹 사건은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 김동겸 대리가 사채예금주 돈 1066억원을 입금처리하지 않고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에게 넘겨준 뒤 예금주에겐 수기통장을 교부한 초대형 불법 금융거래 사건으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93년엔 한양 부도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제일은행은 1990년대 들어 효산그룹(94년), 유원건설·우성건설(95년), 한보철강·기아차(97년) 부도로 부실은행으로 전락했다.



 빅5 시중은행들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대출하다 보니 리스크 관리에 취약했다. 예를 들어 중동건설 붐이 한창 일었을 때는 건설회사가 공사 계약만 따내면 의무적으로 은행이 지급보증을 해주도록 했다. 자연히 은행 경쟁력은 떨어졌고, 부실과 독직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건전경영성 감독을 빌미로 경영에 계속 간섭했다. ‘자율경영’은 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관계에 끈끈한 연줄을 댄 기업들은 특혜대출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은행의 인사에까지 미치게 됐다. 당시 상업은행의 큰 거래선이었던 H건설의 B회장은 인사철이 되면 지점장들에게 “임원으로 승진시켜 줄까”하고 묻는 등 마치 인사권자처럼 행세하고 다녔다는 일화도 있었다. 정부 관료들을 잘 아니까 자신이 말을 넣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유혹을 받은 은행원들은 B회장에게 “제게 심부름을 시켜 주십시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부실 대출에 은행원들이 가담했고, 은행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상대적으로 정부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은행들도 있었다. 금융시장의 후발주자들은 정부가 좀 봐줬다. 80년대 설립된 신한·한미은행이나 90년대 설립된 하나·보람은행이 그 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신생 은행이다 보니 정부가 그다지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금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체가 리스크를 관리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런 마이너리티 은행들이 조상제한서보다 리스크 관리에 있어선 오히려 나은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신한이나 하나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덕분이었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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