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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日안내원 "총리 신사참배 부끄러운 일"

중앙일보 2011.04.13 13:29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정문에 있는 돌사자 2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을 침략하고 약탈해 온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빼앗아 온 전리품을 버젓이 야스쿠니 신사의 정문에 배치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더군다나 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의 일본인 가이드 하세가와 준이치(長谷川 順一·73)씨는 2010년 10월 은퇴하기까지 10년 동안 일본 반성을 외쳤다. 외국인은 물론 일본인도 그의 해설을 들었다.





6000여 명에게 야스쿠니 신사의 진실을 육성으로 알린 일본인 가이드 하세가와 준이치(長谷川 順一·73)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잘못된 일본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小泉純一郞)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후 신사 가이드를 시작했다. 전쟁 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 康弘) 등의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한번씩 참배했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에서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참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참배를 공식화했다. 총리가 이렇게 나서니 일본 국민들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반전 시민단체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일본평화위원회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신주쿠평화위원회의 하세가와씨에게 부탁했다. 당시 그는 50여 명으로 구성된 신주쿠평화위원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전쟁 반대, 안보 조약 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다. 그가 가이드를 하며 받은 액수는 1명당 500엔 뿐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소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집이 나카지마 비행기 도쿄제작소(中島飛行機 東京製作所) 근처였는데, B-29에서 폭탄이 떨어지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때는 병사가 돼서 일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20대 중반들어 본격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행적까지 비판했다. “저의 아버지는 1937년 제2차 상해사건 당시 이등병으로 징병돼 중국 전쟁에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이 항상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중국 전쟁 중에 한국인 위안부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반성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89년 7월 그가 신주쿠 구의원으로 재직할 때 토야마군의학교(山軍校)에서 유골 100여 구가 발견됐다.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생체실험을 했던 옛 731부대 자리에서 나온 유골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유골을 태워 신주쿠 개천에 버리려 했다.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그 유골들을 국립감연증연구소에 보관토록하라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유골을 보내고 싶었지만 신원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일본의 잘못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78년 야스쿠니 신사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을 합사했습니다. 246만여 명의 전몰자가 천왕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없이 신(神)이 되어, 국민의 예배를 받고 있습니다. 신사 20여 개의 전시관에는 대형 함포 등 각종 병기, 자살특공대인 카미카제(神風)돌격대원의 동상 등 수많은 전쟁 유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 전쟁 유물을 반성하며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하세가와는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기술한 일본 교과서와 관련, “1905년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할 당시는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진정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저는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직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가이드 은퇴 후 지난 해 11월 22일 그는 고향인 도쿄(東京)가 아니라 아버지가 복무했던 가나자와(金澤)시의 옛 일본군 9사단 근처로 내려왔다. “이곳은 윤봉길씨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32년 윤봉길씨는 상하이에서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고위 관리를 죽였습니다. 일본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이 곳 가나자와(金澤)시에서 처형했습니다. 저는 윤봉길씨를 전쟁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저는 윤봉길씨의 묘를 찾아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사과할 생각입니다.”



16명의 일본인이 그에게 e-메일을 보내 "몰랐던 역사를 가르쳐줘 감사하다"고 했다.



김정록 기자 ilro12@joongang.co.kr



하세가와 준이치(長谷川 順一)씨의 블로그 (http://hagw.blogzin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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