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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진짜 역사공부는 현장체험, 친구들과 떠나볼까요

중앙일보 2011.04.13 03:30 Week& 1면 지면보기
역사 체험학습은 오감으로 받아들여 이해도 빠른 데다 기억에도 오래 남아 교과서 학습과 맞물렸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학생들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막막함 때문에 선뜻 시도하기 어렵다. 그 거리감을 좁혀주고자 학생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답사를 떠나는 과정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회에는 민정원(서울 정의여고 3)양과 이민지(경기 성남외고 3)양, 정인지(전북 익산 남성고 3)군이 서울의 근·현대사 유적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에 EBS 역사 담당 강사 최태성 서울 대광고 교사가 도우미로 나서 ‘서울 도심 속 근·현대사 흔적 찾기’에 동행했다.


민정원·이민지양, 정인지군의 서울 도심 속 근·현대사 흔적 찾기

글=설승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지루한 교과서를 덮고 직접 계획을 세워 서울 도심의 근·현대사 현장으로 답사를 떠난 이민지(경기 성남외고 3)양, 민정원(서울 정의여고 3)양, 정인지(전북 익산 남성고 3)군(왼쪽부터). [황정옥 기자]







#실내에서



3일 오전 9시30분, 1차 회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펼쳐 대한제국과 관련된 답사 장소를 골랐다. “고종이 즉위식을 거행했던 환구단을 가고 싶다”며 정군이 입을 열자 다들 가고 싶은 곳을 쏟아냈다. 의견을 종합해 덕수궁과 중명전, 환구단, 러시아 공사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정동교회를 가기로 했다. 최 교사의 조언을 받아 후보로 거론됐던 독립문은 제외했다. 다른 장소는 덕수궁 근방에 모여 있지만 독립문은 조금 떨어진 서대문에 있어 일정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역할을 분담했다. 각자가 ‘가이드’가 될 장소를 나눴다. 맡은 장소에 대해 조사하고 답사 때 친구들에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민양이 러시아 공사관과 이화학당·배재학당·정동교회를, 이양이 덕수궁을, 정군이 환구단과 중명전을 맡았다.



오전 10시10분 자료조사



약 1시간 반 동안 흩어져 인터넷으로 자기가 맡은 장소를 조사하기로 했다. 검색 사이트와 백과사전, 기관 웹사이트를 이용했다. 최 교사는 “사전조사가 그날 답사의 질을 좌우한다”며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답사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오래된 건물’에 불과하던 답사 대상이 입체적으로 다가와 깊이 있는 답사가 된다. 스마트폰 활용이나 출발 전 서점에 들러 관련 책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맡은 장소로 친구들을 안내하는 것까지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에 위성지도를 찾아보고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며 위치를 꼼꼼히 챙겼다.



오전 11시40분, 2차 회의









최태성 교사



“어디 먼저 갈까?” “지하철 역 가까운 곳부터는 어때?” 지도를 보며 함께 동선을 고민했다. 이때 최 교사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답사지를 돌면 큰 흐름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1885년 세워진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1886년 세워진 이화학당을 돌아보며 근대 교육의 산실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 후 아관파천(1896)의 러시아 공사관을 보고,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1897)한 환구단을 거쳐 고종이 광무개혁을 펼쳤던 덕수궁, 을사조약(1905)이 체결됐던 중명전 순으로 돌기로 했다.



#답사



낮 12시10분. 근처 매봉역으로 이동했다. 노선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환승 루트를 정했다. 집이 지방이라 표를 끊는 데 낯선 정군을 민양과 이양이 도와주기도 했다. 12시50분, 시청역에 닿았다. 지도와 안내판을 유심히 살피며 미리 계획한 순서대로 해당 장소 담당이 길 안내와 장소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이 끝나면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눴다.



 언덕 위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에서였다. 민양의 설명 중 “도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려는 당시 러시아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말이 끝나자 언덕 아래 펼쳐진 도심을 바라보는 학생들 사이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이 무거운 침묵은 을사조약의 현장이었던 중명전에서도 이어졌다. 이양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고민하던 당시 사람들의 처절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표지판이 눈에 띄지 않는 데다 깊숙한 곳에 있는 환구단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덕수궁 건너편에 있지만 결국 2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환구단은 평생 잊지 않겠어.” 환구단 담당이라 길 안내를 할 때 진땀깨나 흘렸던 정군이 던진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계획에 없던 유적도 만났다. 이화학당이 있던 이화여고를 둘러보다 최 교사가 작은 비석을 가리켰다. ‘손탁호텔 터’였다. 당시 친러시아 세력의 사교장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군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도 역사가 살아 숨쉰다는 것이 새롭다”고 말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뻐근해오는 다리를 두드리며 덕수궁 벤치에 앉았다. 오후 4시였다. 민양은 “대한제국을 전후한 20년 역사에 대해 줄줄이 꿸 수 있는 기회였다”며 “교과서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직접 자료 조사를 하고 내 힘으로 찾아와서 보니까 장소 하나 하나가 뜻 깊다”며 “얼마나 조사를 하고 나오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군은 “앞으로 서울에 알려지지 않은 근·현대사 유적을 발굴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가 오늘 걸어다녔던 이곳에서 110여 년 전에 벌어졌던 급박했던 상황들을 상상하라”며 “앞으로 어디로 답사를 가든 당대 사람들의 입장이 돼 보면 더욱 뜻 깊은 답사가 된다”고 조언했다. 세 학생은 “답사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 쉽다”며 “오늘 힘들게 걸으며 찾아다녔던 곳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효과적인 역사 체험학습을 하려면 …



1 교과서를 토대로 답사지를 선정하면 교과 내용과 바로 연결시킬 수 있다.



2 사전조사는 답사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분담하면 부담도 작다.



3 당대 사람의 입장이 되어 봐라. 훨씬 생생한 답사가 된다.



4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껴라.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을 땐 행인들에게 물으면 된다.



5 사전조사 자료와 답사 과정, 느낀 점은 꼼꼼히 기록해둬라. 블로그 정리나 한 편의 글을 작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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